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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자기만의 미륵이 있다
  • 편집국 기자
  • 등록 2023-01-05 13:18:05
  • 수정 2023-01-05 15:1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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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운명일지도 모르겠다. 미륵사지와의 인연은.

어릴적 교과서에 수록된 미륵사지석탑 사진을 보고 단숨에 매혹되었던 내가 어느새 나이 50을 목전에 두었으니 나와 미륵사지의 인연이 짧다고 할 순 없으리라. 짧지 않은 세월을 살아오며 미혹되었던 수 많은 인연들을 떠올린다. 그것들 중엔 시간이 지나 변색된 것들도, 사라져버린 것들도, 시작되지 않았어야 할 인연도 있다. 그리고,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그 시간들 속에 영원히 박제된 것들, 점점 더 깊어지는 소중한 인연도 분명 존재한다.


내게 미륵사지석탑은 손에 잡히지 않는 꿈과도 같은 것이었다. 100여년 전 어느 일본인이 찍은 사진으로 처음 만났던 저 돌탑은 가슴 속 깊은 곳에 박혀 떠나질 않았다. 하지만 자동차로 두 시간이면 닿는 곳에 살면서도 왜 찾아가볼 생각을 못한 채 청년기를 다 보낸 것인지 그 이유를 알지 못한다. 간절했던 책을 막상 사놓고도 아까워서 첫 장을 열기가 아쉬운 아이러니와 같은 것일까. 인간이란 알 수 없는 존재다.


선뜻 금마로 떠날 계기를 만들지 못하던 나는 간간이 시와 그림, 책으로만 그 돌탑을 접했고, 그러던 와중에 복원공사가 시작되고 말았다.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 시간이 계속 이어졌다. 미륵사지를 가슴 한 구석에 고이 접어둔 나는 비행기를 타고 저 멀리 날아가 솔즈버리의 스톤헨지부터 만났다. 


그러나 인연이라는 건 참으로 질긴 것이다. 그날은 마침내 찾아왔다. 18년이나 이어진 복원공사가 끝났다는 뉴스를 보았다. 심장박동이 빨라지는 걸 느꼈다. 그로부터 얼마 후에 나는 그곳에 서 있었다. 하지만, 기대와 설렘이 너무 컸던 것일까. 몇 달 후 석탑을 마주보고 섰을 때의 당혹감. 수십 년 세월의 동경이 허무함으로 바뀌었다. 


그럼에도 얼마 후에 난 또다시 그곳에 서 있었다. 마치 강한 자기장에 포획되기라도 한 것처럼 석탑 주변을 서성였다. 복원공사 기간에 만나지 못한 것을 한풀이라도 하듯 나는 지인들과 함께, 때론 혼자서, 가끔은 일을 하러 그곳을 찾아갔다. 누군가를 만날 때 일부러 약속장소를 그곳으로 잡거나, 바닷가로 떠났어야 할 워크숍을 그곳으로 바꾸기도 했다. 여름날 생수 한 병을 일부러 미륵사지 앞 편의점에 가서 산 적도 있으니, 이 정도면 집착이라 해야 할까. 


빛을 읽고 해석하는 직업을 가진 내겐 매번 다른 시간에 사랑하는 대상을 보는 것이 행복이었다. 아침, 낮, 저녁, 그리고 남쪽, 동쪽, 북쪽, 서쪽에서 보는 맛이 모두 달랐고, 100미터, 5미터 앞에서 보는 것도 달랐다, 맑은 날, 흐린 날, 멀리 서서, 때론 가까이, 가끔은 동탑 안에 들어가 사각의 프레임 속에 서탑을 넣어도 보았다. 남문지 앞 연못에서 본 일렁이는 두 석탑과 미륵산의 반영은 또 어떠했던가. 해가 지나고, 미륵사지를 찾는 발길이 늘어갈수록 생경해보이던 돌탑이 점점 정겹게 다가왔다. 심지어 잘못된 복원의 대표사례로 불리던 동탑마저도 예뻐 보였다. 나는 그렇게 연애하듯 미륵사지를 즐겼다.



올여름, 익산시의 초청으로 전문가의 해설과 함께 다시 미륵사지에 설 기회를 얻었다, 멋지게 꾸며진 국립익산박물관을 둘러보고 복원전문가의 설명도 들을 수 있어 더없이 값진 시간이었다. 그리고, 한 달여의 시간이 흐른 뒤 나는 또다시 아내와 어린 딸을 태우고 차를 달려 석탑 앞에 섰다. 


아직 다섯 살 밖에 되지 않은 딸은 아빠의 마음을 알 턱이 없을 것이다. 고국을 떠나 먼 독일 땅에서 살아갈 아이에게 천 년 세월을 견뎌온 백제문화의 정수를 보여주고 싶은 바람. 그래서 언젠가 다시 한국 땅을 찾았을 때 아빠의 발자취를 좇아 이 석탑 앞에 서서 소원이라도 빌어볼 수 있을 거라는 기대. 사람들이 떠나고 없는 고즈넉한 저녁의 폐사지를 우린 찾아갔다. 해가 저문지는 한참 됐지만 아직 남아있는 한낮의 열기와 간간이 목덜미를 무는 모기들을 견디며 우린 동탑 앞에서, 또는 서탑을 바라보며 사진을 찍었다. 다음날 이른 아침에도 우린 또다시 석탑을 보러 갔고, 박물관 전시를 관람했다. 몇 달의 시간이 흐른 지금도 이곳 베를린에서 딸 아이는 동탑 앞 당간지주 앞에서 우릴 바라보며 앉아있던 두꺼비 이야기를 한다. 


미륵사지와 나의 인연은 대략 이러하다. 독일 땅에서 살고 있는 내게 미륵사지는 여전한 동경이자 밀당하는 연인이다. 떠나오기 전 미륵산을 올라가보고 싶었지만, 시간을 내지 못한 것이 여전히 아쉽다. 누구나 자신만의 미륵이 있고, 또 꿈꾼다. 미륵사지는 하나가 아니다. 천만가지의 기억과 사연으로 미륵사지를 꿈꾸는 이들이 도처에 있으리라. 그래서 저기 서 있는 석탑은 물성을 뛰어넘은 서사와 이야기로 다시 사람들의 발길을 모을 것이다.


내가 다시 금마를 찾을 날은 언제일까. 그땐 반드시 새벽녘 미륵산 중턱에 서서 아침햇살에 밝아오는 미륵사지를 보리라. 그때 보이는 것은 석탑 뿐만이 아닐 것이다. 석탑이 견뎌낸 시간들. 논밭을 일궈온 농부들과 죽창을 든 동학군, 그리고 천년을 뛰어넘어 무거운 돌덩어리를 정과 망치로 두들기던 석공들까지 만날 수 있는 시간이 될 것으로 나는 기대한다. 


어느새 12월말. 한국엔 폭설이 내렸다고 한다. 철없는 나는 또 상상해본다. 흰 눈에 뒤덮인 황량한 미륵사지. 그 황홀한 풍경을 지척에 둔 익산 사람들이 나는 부럽다.


글/사진 최성욱 (사진가/다큐감독. 독일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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