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왕궁 속에서 왕궁을 거닐다
  • 편집국 기자
  • 등록 2023-02-23 10:52:43
  • 수정 2023-02-23 11:59:56

기사수정
  • ‘익산의 미래, 이제는 왕궁이다’ 4
일주일 넘게 우중충했던 날씨가 일순간에 맑은 태양이 빛을 발한다. 왕궁리유적의 아침 햇빛이 찬란하다. <왕궁면민 혁신교육> 참가자들이 아침부터 백제왕궁박물관 광장에 모였다. 이 교육은 지난 1월 31일부터 매주 화요일에 6주차 12강좌인 강의, 견학, 토론, 탐방으로 짜여 있다. 2월 21일 3주차 강좌는 왕궁 역사‧문화탐방이다. 33명은 대부분 왕궁면 주민들이고 몇 명의 시민들이 참여한 탐방단이다. 탐방 해설은 특별히 익산시 문화관광산업과에 요청한 유칠선 문화관광해설사를 모셨다.

  

# 세계유산 왕궁리유적과 백제왕궁박물관


첫 탐방지는 발을 내딛고 있는 백제왕궁박물관으로 향했다. 작년 3월에 새롭게 단장한 박물관의 모습이 검소하나 누추하지 않은 것처럼 소박하였다. 박물관에는 해설사가 있었지만 특별히 유칠선 박사가 설명하였다. 아마 탐방 설명 때 문화‧탐방 전 일정을 안내한다는 표현이 결코 허언이 아니었다. 박물관에는 가끔 찾았지만 왕궁리유적의 폭넓고 깊이 있는 해설은 처음 듣게 되었다. 무선마이크 없이도 목소리만으로도 자유스럽게 흩어져있는 교육생들을 충분히 압도하였고 시나브로 그 이야기 마력에 빠지게 되었다. 


일정상 박물관 내의 백제왕궁가상체험관, 왕궁 서가 및 옥상 정원은 올라가지 못했다. 옥상에서 바라보는 왕궁리유적과 궁평 뜰 그리고 능선을 따라 용화산을 볼 수 없어 아쉬웠다. 어린이를 동반한 가족들이 나들이 온다면 꼭 추천하고 싶은 박물관의 비밀스러운 곳이다. 


교육생들은 해설사를 따라서 왕궁리유적으로 옮겼다. 옛 백제 때 무왕이 궁전을 걷는 모습을 그리며 해설사를 따라서 병아리가 쫑쫑거리며 걷듯이 하였다. 해가 더 떠오르고 따사롭게 내리쬐어 산책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교육생들은 이미 박물관에서 세심하게 설명을 들었기 때문에 넓은 궁궐터와 왕궁리오층석탑이 예사롭지 않게 보였다. 역시 사랑하는 만큼 관심이 가는 것 같고, 그 시선이 남다르게 느껴졌다.

 

# 백제 왕실 사찰, 제석사지


두 번째 탐방지는 왕궁리유적에서 제석사지로 향했다. 이 절터는 시대산 한 능선의 끝자락 궁평마을에 자리하고 있다. 백제 무왕 때 왕궁을 건설한 후, 왕실 사찰로 지은 신성한 곳이다. 불교의 제석천을 신앙하고 왕실의 안녕을 기원하였다. 왕궁리유적과 들녘 약 1km 사이를 두고 마주하고 있다. 왕궁리유적은 세계유산으로 대접받고 있는데, 제석사는 1,300여 년 동안 아직 폐사 터로만 남아있다. 


면민들에게도 제석사지는 왠지 낯선 곳이다. 더군다나 유적지가 마을 내에 자리하고 있어서 신비함보다 마을의 공터처럼 여겨졌다. 이 사찰은 639년에 소실되자 목탑 내 사리장엄구를 왕궁리오층석탑에 안치했다는 속설이 있다. 옛 화려한지만 사치스럽지 않은 백제 건축을 마음속으로 그려본다. 제석사지에서 불과 500m 떨어진 곳에 폐기장이 발견되어 백제 사찰 고증에 중요한 단서가 되었다. 아쉽게 탐방 시간이 지연되어 찾지 못했다. 


이 유적지도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추진 중이라고 하니까 그 귀추가 주목된다. 밥 먹는 시간이 지났음에도 해설사의 설명에 귀를 쫑긋하는 표정들이 소풍 나온 어린이들을 닮아 있었다. 작년부터 제석사지 정원에서 주민 스스로 마을음악회를 개최하고 있어 제석 즉 수미산의 꼭대기 도리천의 임금이 흐뭇할 듯하다.


마을 앞에는 마을 표지석이 세워져 있다. 이 표지석은 이 마을에 거주하고 있는 왕궁초등학교 이병조 전 교장께서 칠순 축의금으로 손수 세우셨다고 한다. 백제 유적 마을에 어울리는 규모에 맞게 직접 글씨도 썼다고 하니까 그 정성을 이루 헤아릴 길이 없다. 도로 주변과 공터에는 마을정원 가꾸기 사업으로 나무와 꽃을 심어 놓아서 마을 정경이 아름답고 정겨움을 더해 주었다. 

 


# 금강산도 식후경과 국가식품클러스터 


관광버스는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국가식품클러스터 내에 있는 고미식당으로 향했다. 미니버스는 면내 삼학콘크리트의 이성식 회장이 쾌히 후원을 해주셨다. 지역사회의 대소사가 있을 때마다 사회단체들이 손을 벌리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물심양면으로 후원해 주신다. 고향사람들보다 왕궁을 향한 애정이 두텁다. 점심 식사 때 특별히 모셔서 함께 음식과 반주를 나누며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식후에는 길 건너에 있는 우리나라 유일 국가식품클러스터 내의 한국식품산업클러스터진흥원으로 걸어갔다. 이 식품 산업단지는 2017년에 조성이 완료되었지만 지난 6년간 면민들에게는 왕궁 속의 섬처럼 여겨졌다. 그래서 지역사회와 국가식품클러스터의 연계와 왕궁 미래농업의 활성화 방안을 찾고자 견학하게 되었다. 


홍보팀장이 현관까지 마중 나와서 국제회의실까지 안내해주었다. 20분 동안 국가식품클러스터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 2단계 조성사업 계획을 영상과 프레젠테이션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서로를 잘 모르기 때문에 지역사회 내에서 관계 형성을 통하여 새로운 연계 방안을 모색하는 시간을 가졌다. 


식품홍보관에서는 입주기업 60여 개 식품업체가 생산한 식품을 판매하였다. 면민들은 호기심에 한 번 둘러보면서 크고 작은 물건들을 샀다. 대부분 이곳을 처음 찾았고, 품질 좋고 값싼 물품을 판매하는 것도 처음 알게 되었다. 역시 등잔 밑이 어둡다더니 가까이에 우수한 식품과 물건이 있는데도 그 냄새조차 맡을 수 없었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일까?

 


# 왕궁의 명문 고택, 망모당과 우산정사


네 번째 탐방지는 망모당이었다. 호남 명당마을 장중의 한 가운데에 자리하고 있다. 이 정자는 전라북도 문화재로 등록되어있다. 조선 중기 왕궁의 명문가인 표옹 송영구가 돌아가신 아버지를 그리며 지은 정자이다. 그 현판 글씨와 묘소 간택은 명나라 사신 주지번이 했다고 하여 더욱 명성이 자자하다. 진천송씨대종친회에서도 회장님을 비롯한 세 명의 임원이 참여해 주셨고, 해설사의 설명을 밑받침해주었다.


장중 마을에는 우주황씨의 중시조의 본향 터에 신비한 은행나무와 장암의 유래인 너럭바위가 있어서 덤으로 둘러보는 호사를 누렸다. 작년 영화 <한산>에 황박 의병장이 출현했는데 이 마을 출신이라고 한다. 장중 마을 이야기는 마을 리더인 양기신 이장과 김홍혁 전 교장께서 직접 설명해 주셨다. 마을 앞에는 넓은 들녘이 펼쳐져 있고, 그 너머 구릉지가 조선시대 삼남대로였다. 어느 마을은 한 가지 자랑거리 찾기도 힘든데 장중은 참으로 복 받은 마을이다. 


다섯 번째 탐방지인 우산정사로 향했다. 표옹 송영구가 망모당에서 태어났다면 묻혀 있는 곳이 우산정사 재실이다. 이곳은 안타깝게도 왕궁면과 금광 마을 경계인 완주군 봉동읍 재네리에 있다. 해설사도 남의 동네에서는 낯가리는지 문중회장에게 일임하였다. 이 재실 주변에는 진천송씨 우산종중의 선산이 있으며 우리나라 5대 명당 터로 널리 알려져 있다. 전국에서 소리소문없이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우산정사에는 표옹 송영구의 영정과 5백 년 묵은 용솔과, 그 옆 묘소에는 송영구 신도비와 조상들이 양지바른 곳에 묻혀 있다. 그 앞 연못에는 표옹이 명나라에서 처음 시배했다는 백련이 심겨있다. 호남고속도로 옆 선산에는 삼정승 소나무가 늠름하게 서 있다. 북쪽 능선은 소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다. 조선 때 삭녕 최씨 며느리가 부안 솔을 들여오면서 오늘날 낙락장송의 명소가 되었다. 망모당과 우산정사는 조선 풍수지리의 양택과 음택의 전형적인 택지의 모델이라 할 수 있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두 지역이 익산시와 완주군으로 행정구역이 분리되어 있어서 통합적인 문화사업이 어렵다는 점이다. 방문할 때마다 난감하다. 문중에서도 안타깝게 여긴다. 

 

# 익산 최대 저수지 옆 함벽정


오후 3시가 넘어서자 봄바람이 세차다. 몸이 약간 움츠러들었다. 역사‧문화탐방은 날씨가 한몫하는데 교육생들의 가벼운 옷차림에 자꾸 시선이 향했다. 그래도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해설사와 탐방객은 한마음이 되어서 다음 목적지인 함벽정으로 옮겨갔다. 해설사 탐방 시간이 밀려 함벽정은 다음 기회에 미루고자 했다. 김원배 어르신께서 꼭 가봐야 할 곳이라 해서 일정대로 찾게 되었다. 


함벽정은 1931년에 왕궁저수지 조성을 기념하여 이 고장 유지인 송병우 옹이 1937년에 세운 누정이다. 익산 최대 규모이고 전라북도 문화재이다. 저수지 제방의 제일 높은 산봉우리에 자리하고 있다. 김원배 옹은 함벽정이 있는 용남마을 주민으로서 수십 년간 쓰레기, 낙엽 등 치우는 봉사활동을 해왔다고 했다. 그러면서 주변에 잡목이 우거져 있어서 문화재가 훼손되고 주변 경관을 해치고 있기에 잡목을 제거해달라고 힘주어 강조했다. 


함벽정은 학창 시절에 이 지역의 소풍 장소로 유명했다. 마을 주민들의 나들이 명소이기도 했다. 또한 이곳에서 약 1km 떨어진 성묘산의 학현산성까지도 소풍 무대였다. 함벽정 제방과 하천에는 큰 벚나무가 심어 있고, 4월에는 봄 햇살에 화사한 빛깔을 뽐내기도 하였다. 왕궁저수지 물은 사시사철 푸르지만, 시절이 변화되어 함벽정을 찾는 이나 벚꽃 구경하는 사람은 잦아들었다.

 

# 호남‧익산의 문인, 소세양


왕궁역사‧문화 탐방객은 마지막 일곱 번째 방문지인 용화산 기슭 진주소씨세거지의 양곡 소세양신도비를 찾았다. 관광버스에서 이동하는 짧은 시간에도 봄바람은 더욱 거세졌다. 신도비가 있는 양지바른 선산에 올라서자 앞뒤에 도순저수지와 용화산이 자리하여 전형적인 배산임수 지형이다. 


양곡 소세양은 조선 중기 때 호남을 대표하는 문인이자 선비이다. 왕궁, 익산뿐 아니라 호남의 손꼽을 만한 명문가라 할 수 있다. 황진이와의 로맨스만 전해 오는 줄 알면 무지스럽다. 이를 입증하듯이 익산 유일 소세양신도비가 진주소씨세거지에 있다. 신도비는 죽은 사람의 평생 사적을 기록하여 무덤 앞에 세운 비이다. 조선 이후 정2품 이상의 벼슬을 한 양반에게 사후 세우게 했다. 흰색 톤 여산석의 넓적한 앞 뒷면에 행적이 기록돼 있지만, 마모가 심하고 한자로 새겨져 있어서 판독하기가 쉽지 않다.


대전에 거주하는 문중회장께서는 직접 내려와 임원들과 함께 탐방객을 맞이하였다. 봄바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후손들이 정중하게 소세양의 일대기를 설명하는 모습이 존경스러웠다. 양곡이 지은 시가 1천여 수가 넘고 <양곡집>이 있다고 하는데 어느 세월에 문집이 발간될는지 안타깝기 그지없다. 또한 호남 대표 문인임에도 불구하고 그 선비를 기리는 변변한 문학관조차도 없다는 것에 서글퍼졌다. 과연 경상도에서 태어나 묻혔다면 그럴 수 있었겠는가 반문을 해보았다.

 

# 왕궁이 보면 볼수록 신비스럽다


선산에서 하산한 탐방객은 주차장에서 문중 임원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처음 출발했던 백제왕궁박물관으로 향했다. 잠깐 이동시간 중에도 유칠선 해설사는 한가지라도 더 전해주기 위하여 마이크에서 입을 떼지 않고 설명을 이어갔다. 이제 마무리할 시간이 되자 오늘 하루 동안 왕궁 문화‧탐방을 위하여 수고하신 교육생, 해설사, 기사 그리고 협조해주신 공무원들을 위하여 박수와 함성으로 대미를 장식하였다. 문화‧탐방 대미도 아름다운 노을처럼 물들어 갔다.


왕궁 역사‧문화유적지를 8곳을 짧은 하루 동안에 돌아보면서 우리 고장에는 참으로 보물들과 인물과 역사 이야기가 많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다른 지역은 국보, 보물, 유적지 등 한 가지도 없는데, 왕궁은 마한‧백제시대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새로운 건축물과 유적지가 발굴되고 있으니까 참으로 복 받은 천혜의 땅이다. 왕궁은 백제 때나 조선시대에나 인물들이 꾸준히 배출되어 결코 예사로운 고장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문화탐방을 하다 보면 흔히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말을 많이 듣는다. 왕궁에 오래 살았다고 왕궁을 잘 알고 왕궁에 살지 않는다고 왕궁을 잘 모르는 것도 아닌 것 같다. 왕궁을 속살을 깊게 들여다보면 볼수록 더욱 신비스럽고 비밀스러운 것 같다. 귀가하던 중에 차 옆에 놓여있는 <왕궁면민 혁신교육 자료집>의 ‘익산의 미래, 이제는 왕궁이다’란 주제가 더 깊이 있고 신선하게 다가왔다.

 

 

 글쓴이 이용선<왕궁면이장협의회장>

0
  • 목록 바로가기
  • 인쇄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