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메뉴로 바로가기 본문으로 바로가기

익산 쌍릉(소왕릉)서 묘표석 발견…20일 공개

기사 등록 : 2019-09-19 10:22:00

문명균 기자 art3313@hanmail.net

  • 인쇄하기
  • 스크랩하기
  • 메일 보내기
  • 글씨 확대
  • 글씨 축소
트위터로 기사전송 페이스북으로 기사전송 구글 플러스로 공유 카카오스토리로 공유 네이버 블로그로 공유 네이버 밴드로 공유

20일 오후 2시 발굴현장 설명회
선화공주 무덤 관련 자료는 없어 

 ▲ 소왕릉 석실 내부.   ⓒ익산투데이
▲ 소왕릉 석실 내부.   ⓒ익산투데이

 

문화재청(청장 정재숙)과 원광대학교 마한‧백제문화연구소(소장 최완규), 익산시가 시행한 익산 쌍릉(사적 제87호) 발굴조사 중 소왕릉에서 묘표석이 확인돼 오는 20일 오후 2시에 발굴현장을 공개한다.

 

발굴현장은 익산시 석왕동 6-11번지 일원으로 익산 쌍릉(사적 제87호), 백제 시대 무덤인 대왕릉과 소왕릉이 180m가량 서로 떨어져 있다.

 

익산 쌍릉은 문헌 기록에 의하면 백제 무왕과 그의 왕비 능으로 알려져 왔고, 고려 시대에 이미 도굴된 기록도 남아 있다.

 

이들 두 고분은 1917년 일본인 학자(야쓰이 세이이쓰, 谷井濟一)에 의해 발굴된 바 있으나, 정확한 정보를 남기지 않아 2017년 8월부터 고분의 구조나 성격을 밝히기 위한 학술조사가 진행돼 왔다.

 

소왕릉에 대한 발굴조사는 2019년 4월 고유제를 시작으로 현재까지 봉분과 묘도의 축조과정과 양상을 파악했으며, 일제강점기 당시 발굴 흔적과 그 이전 도굴 흔적을 그대로 확인할 수 있었다.

 

 ▲ 소왕릉 발굴전경.   ⓒ익산투데이
▲ 소왕릉 발굴전경.   ⓒ익산투데이

 

이번 발굴조사에서 가장 주목되는 것은 국내 최초로 왕릉급 고분에서 두 종류의 묘표석이 발견된 점이다.

 

석비(石碑)형으로 된 것과 석주(石柱)형으로 된 것이 나왔는데, 석비형 묘표석은 일반적인 비석과 유사한 형태로 석실 입구에서 약 1미터 떨어진 지점에 약간 비스듬하게 세워진 채로 확인됐다.

 

크기는 길이 125㎝, 너비 77㎝, 두께 13㎝이며, 석실을 향하고 있는 전면에는 매우 정교하게 가공됐고, 그 뒷면은 약간 볼록한 형태다.

 

석주형 묘표석은 일제강점기에 훼손된 봉토 내에서 뉘어진 상태로 발견되어 원래 위치인지는 불분명하다.

 

 ▲ 묘도 내 묘표석(비석형).   ⓒ익산투데이
▲ 묘도 내 묘표석(비석형).   ⓒ익산투데이

 

묘표석은 길이 110㎝, 너비 56㎝의 기둥모양으로 상부는 둥글게 가공됐고, 몸체는 둥근 사각형 형태다.

 

이들 두 묘표석은 문자가 새겨지지 않은(무자비, 無字碑) 형태로 발견됐으며, 참고로 석주형 묘표석과 비슷한 예는 중국 만주 집안(集安) 지역의 태왕릉 부근에 있는 고구려 봉토석실분인 우산하(禹山下) 1080호의 봉토에서도 확인된 바 있다.

 

이번에 묘표석들이 나온 소왕릉의 봉분은 지름 12m, 높이 2.7m 정도로, 암갈색 점질토와 적갈색 사질점토를 번갈아 쌓아올린 판축기법이 사용됐는데 이는 대왕릉 판축기법과도 유사하다.

 

석실은 백제 사비시대의 전형적인 단면 육각형 굴식돌방무덤(횡혈식석실)이다.

 

석실의 규모(길이 340㎝, 폭 128㎝, 높이 176㎝)는 대왕릉의 석실 규모(길이 400㎝, 폭 175㎝, 높이 225㎝)에 비해 작은 편이지만 측벽 2매, 바닥석 3매, 개석(덮개돌) 2매, 후벽 1매, 고임석 1매의 구조 짜임새는 동일하며, 석재 가공 역시 치밀한 편이다.

 

연도는 길이가 짧은 편으로, 연도 폐쇄석과 현문(현실 문) 폐쇄석이 두 겹으로 구성돼 대왕릉과 같은 양상이다.

 

소왕릉 석실의 바닥에는 관대(길이 242㎝, 폭 62㎝, 높이 18㎝)가 놓여있었다.

 

▲연도(羨道): 고분의 입구에서 시신을 안치한 방까지 이르는 길
▲현실(玄室): 시신을 안치한 방
▲관대(棺臺): 무덤 안에 시신을 넣은 관을 얹어놓던 평상이나 낮은 대(널받침)

 

 ▲ 봉분 내 묘표석(석주형).   ⓒ익산투데이
▲ 봉분 내 묘표석(석주형).   ⓒ익산투데이

 

묘도는 석실 입구에서 남쪽으로 길게 뻗어 있으며, 규모는 최대 너비 6m, 최대 깊이 3m, 현재까지 확인된 길이는 10m 가량이다.

 

일정한 성토(盛土, 성질이 다른 흙을 서로 번갈아 가면서 쌓아올리는 기술)를 통해 묘도부를 조성한 후 되파기한 걸로 판단된다.

 

폐쇄부는 점질토와 사질점토를 번갈아 쌓았으며, 묘도부 10m 지점 끝단에서는 다듬은 석재를 이용해 반원형상의 석재를 놓아 묘역의 범위를 표시한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석실 천장의 북동쪽 고임석(천장부를 받치는 석재) 부분에는 일제강점기 이전에 만들어진 길이 68㎝, 높이 45㎝ 정도의 도굴 구덩이가 확인됐다.

 

▲묘도(墓道): 무덤의 입구에서부터 시체를 두는 방까지 이르는 길

 

 ▲ 일제강점기 교란범위 내 석실 및 묘표석 노출상태.   ⓒ익산투데이
▲ 일제강점기 교란범위 내 석실 및 묘표석 노출상태.   ⓒ익산투데이

 

소왕릉은 선화공주와 관련된 설화를 간직하고 있는 고분으로 많은 관심의 대상이 되어 왔지만, 이번 발굴에서는 이와 관련된 적극적인 자료는 찾을 수 없었지만 봉토나 석실의 규모와 품격에 있어서 왕릉급 임을 확인했다.

 

특히 이번에 발견된 묘표석은 각각 석실입구와 봉토 중에 위치하고 문자가 없는 점에서 무덤을 수호하는 진묘(鎭墓)와 관련된 시설물로 추정할 수 있으며, 백제왕실의 장묘제 연구에 새로운 계기가 마련된 것으로 평가된다.

 

앞으로 남은 조사와 인근 대왕릉과의 비교검토를 통하여 주인공의 실체가 밝혀지기를 기대하고 있다.

 

문화재청은 앞으로도 익산시와 함께 쌍릉을 비롯한 익산지역 핵심유적에 대한 단계적인 조사를 통하여 백제 왕도의 실체를 복원할 수 있는 학술자료를 확보하고, 나아가 백제왕도 핵심유적의 보존관리 수준을 향상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 밝혔다.

인기동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