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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 이 한 장의 사진10
  • 익산투데이
  • 등록 2019-10-16 10:16:00
  • 수정 2019-10-16 10: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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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 이 한 장의 사진10

1965년, 신광교회 앞 남성중학교 학생들

 ▲ 남성중학교 1966년 졸업앨범에서./사진=황용배.   ⓒ익산투데이
▲ 남성중학교 1966년 졸업앨범에서/사진제공=황용배.   ⓒ익산투데이

 

남성중학교 1966년 졸업앨범에서 나온 사진이다.


사진을 보내주신 분은 황용배 선생으로 올해 70세 이시다.


대장촌에서 초등학교(춘포국민학교)를 졸업하고 남성중학교에 입학한다. 후일 전주고등학교와 전북대를 거쳐 LG에 입사하여 북경에서 지사장을 지냈다.


당시 졸업사진을 찍는 곳으로 익산역 앞 혹은 신광교회 석조전이 배경 사진인 것들이 많다.

남성고 학생들은 멀리 만경강뚝에서 찍은 사진도 보인다. 큰 교회였던 만큼 사연도 많고 이번 사진전에 신광교회 배경의 사진들이 많이 들어왔다. 1949년생들의 제1회 유치원졸업식 사진도 들어왔다.


여기 신광교회는 마동이 아니다. 남중동, 지금 `남중교회` 자리다. 시내 한가운데 위치하여 한강 이남에서는 제일 큰 교회라는 말이 있었다. 안경운 목사님 때 전성기였다.


1950년대 소설가 윤흥길이 이리동중학교 재학 시, 신광교회 중등부 주일학교에 다녔다. 당시 교회 주일학교는 갈 곳 없는 청소년들에게 신앙공간이자 문화공간이었다. 또 누구는 연애당이라 했다.


소설 「황혼의 집」에서 무허가 집이 강제로 철거되어 가족의 절망을 어쩔 수 없어 교회의 종을 쳐대는 장면이 나온다. 감동적이다.


윤흥길 소설가의 경험이었다고 한다. 가출을 일삼던 소년 윤흥길은 신광교회 목사님의 세례를 받고 가출을 멈춘다. 지금도 독실한 신자다.


전국에서 윤흥길의 소설을 읽고 익산을 답사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다. 전국의 중고문예반과 대학생 문창과 학생들이 그 고객이다. 전국의 문학인과 문학공간을 답사하며 책을 낸 홍숙정 선생님은 ‘모르고’ 학생들을 마동 신광교회로 데려갔다.


현재 남중교회 앞에 윤흥길 소설가의 소설 속 이야기를 담은 사인보드가 필요하다는 말씀이다. /신귀백(영화평론가. 익산민예총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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