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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시간 자는 고등학생들
  • 익산투데이
  • 등록 2014-09-16 10:3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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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1 ‘멍상’ 군의 일상은 늘 쫓김이다. 아침 7시에 엄마가 깨워 억지 잠을 깬다. 씻고 아침 먹고 8시 10분에 학교 도착하면 하루 시작이다. 학교 끝나는 시각이 밤 10시. 집에 와서 씻고, 카톡 열어놓고 인강 듣다 잠들 때가 1시다.
학교에서 매일 쫓기는 건 내신과 수능 준비다. 늘 숙제가 있다. 학교생활 중 어느 시간이든 쪼개서 숙제를 하긴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학생들처럼 수업 시간 집중에는 관심 없다. 지쳐 있다. 오전에 졸음과 함께 보내는 것도 오래된 습관이다.


잠 좀 잤으면 좋겠다 싶어 주말에 좀 자려고 한다. 근데 주말에 많이 자도 머리가 멍상 상태에서 벗어지 않는다. 맑지 않고 늘 멍하다. 친구들도 다 그러니 고등학생은 다 멍한가보다 생각하기도 한다.
공부를 못하는 건 아니다. 나쁘지 않은 성적이다. 하지만 늘 불안하다. 부모님은 좋은 학교 원하시는 줄 알지만 그렇게까지는 자신이 없다. 이렇게 쫓겨 사는 생활에 뭔가 공부를 더 해야 할 것 같은 압박이 늘 있다.


여름 방학 시작하면서 엄마를 따라 한의원에 보약 지으러 갔다. 한의원에서 보약 말고도 많은 위로를 받고 왔다. 잠 부족 +성적 스트레스 + 하루 종일 과도한 공부 = 노권상.. 진단은 노권상(勞倦傷)이었다. 병이라고 했다. 육체와 정신을 너무 많이 사용해서 몸이 피곤해진 상태라 했다. 방학 동안만이라도 잠 좀 제대로 자고 푹 쉬라고.


중고등 학생들의 노권상을 해결하는 첫 열쇠는 잠이다. 잠을 억지로 통제하지 않고 자연상태로 재웠을 때 중고등 학생은 8.5~ 9.5 시간을 잔다. 힘 넘치는 청소년이 무슨 잠을 그렇게 많이 자는가 궁금할 수 있다. 한의학에서는 일생을 목-화-토-금-수 의 특성을 그리며 산다고 한다. 아동기는 막 자라는 나무처럼 크는 시기라 목이다. 20~30대는 여름처럼 왕성한 시기라 화(火)기운으로 표현한다. 불처럼 왕성하다는 뜻이다. 40대는 흙처럼 안정된 시기라 토(土)라 추상화한다. 갱년기는 가을처럼 확 변하는 때라 하여 금(金)이라 한다. 노년기는 고요한 물처럼 안정된 시기라 하여 수(水)로 표현한다. 청소년기는 목에서 화로 넘어가는 시기다. 가장 왕성한 때 맞다.


잠 들고 깨는 일은 ‘위기(衛氣)’라는 기가 한다. 위기가 몸 안에 있는 장부(간, 심장, 신장같은 장기들)로 들어가면 잠들고, 아침에 눈뜨는 순간 위기는 밖으로 나와 경락을 돌아다닌다. 경락은 몸 안의 장기와 뼈를 뺀 나머지 부위에 있다. 청소년기에는 위기가 왕성하게 많이 돌아다닌다. 그래서 낮에 활동도 왕성하고 잠도 깊게 많이 잔다. 노년기에는 위기 양이 적어서 낮에도 졸고, 밤새 자고도 한숨도 못 잤다고 불평한다.


그래서 청소년기에 평균 9시간 재우는 일은 위기가 장부에서 쉴 시간을 주는 일이다. 장부에 9시간은 쉬어야 낮에 활발한 움직임을 보일 수 있는 거다. 밤에 조금 재우면 현재 중고딩처럼 된다. 머리 멍하고, 졸고, 불안하고, 우울해진다. 혈압도 올라가 있다.


우리나라만 중고딩 수면 부족이 문제되는 게 아니었다. 미국도 그랬다. 미국 소아청소년과 학회에서 2014년 8월에 등교 시간을 늦추었을 때 나타난 변화를 정리한 논문을 발표했다. 7시 반쯤 시작하던 학교 수업을 8시 반 이후로 늦춰 본 학교들이 많이 있었다.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9시간 수면 학생의 숫자가 33%에서 66%로 두 배 늘어난 일이었다. 청소년기는 목화(木火) 기운의 시기라 초저녁에 잠을 자려 해도 잠이 안 온다. 11시 쯤 잔다. 결국 아침에 자게 해야 한다. 그래서 아침 수업 시작을 늦췄다. 지각생이 줄었고, 결석이 줄었고, 수업 시간에 조는 학생이 줄었고, 성적이 올랐다. 행복감도 올라갔다.


학교 늦게 시작하면 밤에 자는 시간만 늦춰지는 거 아니냐고 걱정하는 분들이 있다. 미국 청소년들이 검증했다. 학교 한 시간 늦추면 정확히 잠도 한 시간 늘어났다.


우리나라 고딩들은 지금 6시간 자고 산다. 살아 있는 것들의 원칙 중에 ‘발생이 거의 결정적 위치를 차지한다’ 는 게 있다. 만들 때 잘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이렇게 못 자게하고  혹사시켜 만든 몸이 평생 건강할 리 없다.

 

/글 이재성(모현동 이재성 한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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