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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름을 그리는 최희순 작가의 화생화사(畵生畵死)
  • 김달
  • 등록 2015-03-03 15:4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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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익산투데이
▲최희순 화가    ⓒ익산투데이

 

 

 

만물(萬物)이 푸른 봄철이라는 뜻으로, 십 대 후반(後半)에서 이십 대에 걸치는 인생의 젊은 나이를 일컫는 청춘. 삼십대를 지나 오십을 바라보는 나이에 청춘이라는 말은 꼭 맞지 않는 양말을 신은 것처럼 어색하기 그지없다. 실버청춘도 있다하지만 서른과 오십 중간에 낀 사십은 어디에도 어울리지 않는 막연한 나이 같이 느껴진다.

 

그러나 영등동에 소재한 ‘최희순 아틀리에’의 원장이자 화가 최희순(46) 작가에게는 여전히 꿈이라는 단어가 누구보다 더 어울린다. 초등학교 때부터 붓을 잡아 현재까지도 그림에 대한 목표, 꿈이 뚜렷한 최 작가. 마흔 여섯의 나이에 최 작가의 꿈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15년간 운영하던 미술학원을 접고 본격적인 작업 활동을 위해 아틀리에 문을 연지 어느 덧 1년. 연휴가 끝난 월요일 최 작가를 만나 작품에 대한 열정과 화가로서의 꿈을 듣는 시간을 가졌다.

 

 

◆악바리 소녀 ‘늦깎이 미대생’ 되다
“재능이 있었는지 모르겠어요. 그런데 3~4학년 때 담임선생님께서 어느 날 그러시더라고요. ‘너 화가되라.’ 라고. 뜬금없었죠. 그저 그림 그리는 게 즐거워 하루 종일 그렸는데 그 모습이 좋아보이셨나봐요.”

 

초등학교 때부터 최희순 작가는 단 한 번도 꿈을 바꿔본 적이 없다. 폼에 죽고 폼에 사는 사람을 폼생폼사라고 한다면 최 작가는 화생화사(畵生畵死)다. 그림을 위해 살았고, 그림이 곧 최 작가의 인생이자 최 작가 본인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듣기 좋은 꽃노래도 한 두 번이면 질리다 던데 최 작가는 그림 앞에만 서면 여전히 꿈을 꾸는 소녀가 된다. 앳된 얼굴에 싱그러운 미소, 작은 손. 최 작가의 이미지는 여리게만 보인다. 실제로 그녀의 대학교 은사님은 최 작가에게 부잣집 철없는 외동딸로 봤다고 한다.

 

“얼마 전에 찾아 뵌 교수님은 저의 이야기를 듣고 놀라시는 눈치였어요. 강의 중간 중간 학비를 벌기 위해 그림 그리다 말고 손을 흔들고 아르바이트하려고 달려 나갔죠. 그 때는 그런 줄도 모르셨을 테니 얼마나 어이가 없으셨을까 싶어요. 툭하면 나갔으니까. 돈 벌면서 학교 다니는 게 쉽지 않았어요.”

 

당시만 해도 상고의 위세는 인문계 보다 훨씬 강했다. 전문 기술을 배울 수 있는데다가 졸업 후 바로 취업까지 가능해 인기가 상당했다. 최 작가의 부모님 또한 그녀가 상고를 진학하기를 바랐지만 그녀는 억지로 점수를 낮춰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오로지 미술을 위해서였다. 형편을 둘째 치고 예나 지금이나 미술과 같은 예술 계통은 밥 먹고 살기 힘들다는 인식 때문에 부모님을 설득하는 데 상당한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고등학교를 졸업해 공장에 취직한 뒤 돈을 벌어 스물두 살에 미대를 가는 게 스무 살 최 작가의 목표였다. 하루 종일 공장에서 일하고, 퇴근한 뒤에는 화실에가 이문세의 노래를 들으며 피곤함도 잊은 채 그림에 매달렸다.

 

“아무래도 입시생이 아니니까 제대로 가르쳐 주는 사람이 없더라고요. 한두 시간씩 자면서도 부족하다고 느꼈죠. 이대로는 죽도 밥도 안 되겠다 싶어서 비 오는 날 무작정 한국화 김중현 선생님을 찾아가 매달렸어요. 그 때가 스물두 살이에요. 대학을 진학하려고 했던 나이였는데 여전히 일을 하고 있었던 거죠.”

 

간절함이 전해졌는지 최 작가는 김중현 선생 밑에서 지도를 받아 드디어 스물네 살에 숙명여자대학교 회화과에 입학을 하게 됐다.

 

 

 

 ▲    ⓒ익산투데이
▲ 최희순 아틀리에 내부 모습   ⓒ익산투데이

 

 

 

◆제2의 인생 ‘아틀리에’
대학에 입학해서도 하루도 쉴 날 없이 과외, 공장 아르바이트를 하는 통에 최 작가는 서른이 되어서야 학사모를 썼다.

 

자신의 그림인생이 시작될 찰나 먹고 사는 일은 최 작가의 발목을 붙잡았다. 그림만 그릴 수 있다면 뭔들 못하겠나 싶어 그녀는 어양동에 초등학생과 중학생을 대상으로 미술학원을 열었다. 15년간이나 운영하며 베테랑 선생님으로 이름을 알렸지만 최 작가는 단순히 가르치고 돈 받는 것에 목적을 두기에 앞서 부모님 때문에 억지로 끌려온 아이들에게 진정한 미술의 즐거움을 알려주려는 소명의식을 가졌다.

 

“저는 미술이나 음악이나 예술분야에 있어 취미생활로 하시는 분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예술 하면 돈 많이 든다, 아무나 할 수 없다는 고정관념이 있는 것 같아요. 그런 관념을 깨고, 예술에 대한 보편적 공감대가 형성되기 바라요. 그 점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고 싶어서 아틀리에를 열게 됐어요.”

 

최 작가는 지난 해 학원을 정리하고 영등동에 ‘최희순 아틀리에’ 간판을 걸었다. 그전에 운영하던 학원과 달리 취미로 그림을 그리고 싶어 하는 일반인을 대상으로 지도를 하는 동시에 본인의 작업을 하기 위해 열게 된 것이다. 수강생에게 매달리느라 작업에 손을 못 대는 기간이 길어지는 게 조바심이 났고 결정적으로 수술이 계기가 됐다. 최 작가는 2012년, 2013년 각각 자궁과 어깨수술을 받았다. 젊었을 적 학비를 벌기 위해 뛰어다니느라 고생했던 몸이 학원과 살림, 육아를 병행하면서 결국 망가(?)졌다. 망가진 몸을 바라보면서 최 작가는 도리어 붓을 꽉 붙잡았다.

 

“항상 그랬어요. 나중에 그리면 되지 하고. 제가 잊고 있었던 거죠. 시간은 흐른다는 사실을. 있어도 못하고 없어도 못한다면 조금이라도 나을 때 해야겠다 싶었어요. 나중이 아니라 지금이 아니면 안 된다는 마음으로 문을 결심했어요. 안하면 제 손해잖아요. 다행히 가족들이 많이 힘이 돼줘요. 전시를 할 때나 작업을 할 때나 보이지 않게 응원을 해줘요. 청소만 조금 더 도와주면 좋겠지만요.(웃음)”

 

아픔은 곧 최 작가에게 전화위복이 되었다. 그림 인생에 전화점이 된 이후 최 작가는 더욱 그림과 더불어 학구열에 열정을 쏟아 붓기 시작했다. 늦깎이 대학생이 이제는 또 늦깎이 대학원생이 되어버렸다. 숙명여대 조형예술학과 2학기째인 최 작가는 일주일에 두세 번 강의를 듣기 위해 서울을 가고 남은 시간은 아틀리에 운영을 하며 바쁜 시간을 오고 있다.

 

 

 ▲    ⓒ익산투데이
▲최희순 作  ⓒ익산투데이

 

 

◆삐그덕 삐그덕 ‘흐름’을 그리다
“작업에 손을 댔다가 놓았다가. 제 인생은 시간과의 싸움이었어요. 그리고 시간은 또 흐름과의 싸움이잖아요. 그렇잖아요. 모든 건 변하고, 흘러가요. 세월, 자연, 몸, 마음. 매순간 흐르는 것들이에요. 흐르는 것들을 캔버스 위에 붙잡아놓고 싶어요. 아니, 흐름의 찰나의 순간을 저장하고 싶어요.”
그림을 그리려고 하면 수술한 어깨가 아파온다는 최 작가. 그림이 좋지만 그림으로 인해 아프고 스트레스도 받지만 그럼에도 최 작가는 그림뿐이다.

 

“이제 시작이에요. 전업 작가라는 건 곧 그림만 그리고 싶다는 뜻이잖아요. 끊임없이 그리고 싶어요. 누군가의 발길을 머무르게 하는 잡아끄는 그런 그림을 그리고 싶어요. 저희 아틀리에를 찾는 분들이 30대부터 50대까지 다양해요. 그 분들에게도 그림은 곧 꿈이에요. 그림에 대한 지적 욕구가 얼마나 강한지 몰라요. 나이와 상관없이 꾸는 게 꿈 아닐까요.”

 

최 작가 말대로 시간은 분명 속절없이 흐르게 되어 있다. 돈, 명예, 권력 그 아무리 잘난 것이라도 시간만은 살 수 없다. 흐르는 시간을 붙잡지는 못하더라도 그 시간만큼 누구보다 최선을 다하며 꿈을 꾸는 최 작가. 그녀의 나이 쉰이 다 되어가지만 여전히 그녀의 얼굴과 마음에는 그리겠다는 일념으로 직장과 학교를 종횡무진 하던 청춘이 고스란히 살아있다. 메말라가고, 허물어져 가는 것이 아닌 흐를수록 더욱 아름답고 견고해지는 최 작가의 다음 작품이 벌써부터 기대되는 이유다.

 

 

*최희순 작가 약력
이리여자고등학교 졸업
숙명여자대학교 회화과 서양화 전공

2013 첫 개인전(익산 현대갤러리)
2013 토포하우스 기획전
2013 팔레 드 서울 초대전
2014 여성2인전
2014 전북나우아트페스티벌
2014 동기전
2015 2회 개인전(익산현대갤러리)

2014 춘향미술대전 입선
2014 순천미술대전 특선

현 We now회원, 참미술협동조합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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