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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 농업이 간다 이덕범 대표
  • 이상훈
  • 등록 2016-01-13 12:3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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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전과 연구로 희망이 있는 농업을 꿈꾼다"

머나먼 길을 찾아 여기에 꿈을 찾아 여기에
괴롭고도 험한 이 길을 왔는데
이 세상 어디가 숲인지 어디가 늪인지
그 누구도 말을 않네

사람들은 저마다 고향을 찾아가네 -조용필의 ‘꿈’중에서









70년대 꿈을 찾아 농촌에서 도시를 향하던 많은 사람들을 묘사한 노랫말은 옛말
꿈과 희망을 찾아 농촌으로 귀농하는 이들이 많아지고 있다. 도시 생활에 대한 외로움과 타인과의 경쟁보다는 나 자신을 찾기 위한 도전과 새로운 희망을 찾아 귀농한 택한 사람들 그 중 이덕범 대표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서울촌놈이 되기 위한 도시탈출
서울에서 나고 자란 이덕범 대표는 서울토박이다. 농산물을 가꾸기 보다는 구입하여 먹을 수 있는 환경에서 자랐다. 귀농 전 백화점 내에서 아웃도어 매장을 10년 정도 운영하다보니 동종업계에서는 성공한 경영인으로 소문이 났다. 덕분에 경제적으로 넉넉하였고 사고 싶고 하고 싶은 일들은 마음껏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사람과 사람과의 직접적인 접촉은 마음과 마음을 점점 피곤하게 만들었고 어느새 ‘나’는 사라지고 남에게만 맞추는 ‘나’로 길들여져 있었다.

사람으로 인해 행복했지만 결국 사람이 그를 힘들게 한 것이었다. 개인주의에 물들어가는 각박한 서울의 삶. 돈보다는 사람의 정이 그리웠다. 사람이 그리운 건 아내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그들은 도시탈출이라는 인생1장2막의 여정을 시작하게 되었다.



인생1장2막을 찾아서

막상 도시를 떠난다고 하니 무얼 다시 시작해야 하며 어디로 갈지가 막막했다. 그 때 누나가 농사를 짓고 있는 익산이 떠올랐다. 망설일 틈도 없이 그 곳이다 싶었다. 아무런 연고도 없지만 왜인지 모르게 자꾸만 마음이 끌렸던 곳. 그렇게 그는 제2의 고향을 익산으로 정하게 되었다. 2013년 이덕범씨의 가족은 30여가구가 옹기종기 모여 사는 익산의 마을로 귀농했다.



낮설 곳에서 생활
맨 처음 집을 구할 때는 발품을 많이 팔았다. 연고가 없이 집을 구하는 것은 참으로 막막하 일이었다. 아무래도 지역민이 아니다보니 집에 대한 정보가 부족했다. 열심히 알아보고 열심히 뛰어다니는 수밖에 없었다. 어찌어찌 집을 구했지만 이번엔 농가가 기다리고 있었다.


귀농 초기엔 ‘쌀은 그저 땅에서 저절로 나오는 줄로만 알았던 게 농사지식의 전부였다’는 이덕범씨. 정부 보조금 없이 3억으로 3천200평을 구입하고 8천만원을 들여 비닐하우스 7동을 마련하고 이 중1동은 부부가 4일 동안 고생하며 직접 지을 만큼 농사일에 대해 강한 애착을 가졌다.



땅을 잘 아는 것 그것은 위험부담을 줄이는 척도
귀농 초기에 농작물에 가격이 좋아도 땅을 계속 갈아엎은 적도 있었다. ‘내 땅의 성질을 잘 알고 덤볐어야 했는데 남들만 따라가려니 안 되는 건 당연한 거였어요. 농사를 지을 때는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이 있죠. 다른 사람의 땅과 내가 재배하는 땅은 다른 것이 있다.’과 말한다.



귀농하면서 많은 도움을 받은 곳은?

귀농귀촌협의회는 귀농 전 교육과정에서 알게 되었는데 농사기술이나 여러 가지 정보를 얻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재배 작목별로 멘토가 분류돼 그 안에서 교류가 이뤄지다 보니 더 빨리 농촌에 안착할 수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농업6차산업을 통한 소득향상

지금도 배워야 할 것이 많다고 하는 이덕범 대표는 딸기 하우스 1동에 LED등을 이용해 재배하고 있다. 일조량이 작물에 비치는 영향과 품질상태를 비교하여 더 좋은 농산물을 소비자에게 전달하고 싶다고 하면서 앞으로 자신이 재배하는 작물을 가공품으로 만들어 소비자들과 만날 계획이다. 그 시작은 딸기잼부터이다. "저는 6차 산업을 통한 가공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가공을 통해 더 많은 소비자들을 만날 수 있고 무엇보다 건강한 먹을거리를 다양한 방업으로 내어놓을 수 있으니까요"라 말한다.


주소 : 익산시 여산면 두여리 1502-2번지
        010-3192-0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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