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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훈 “익산을 바꿀 첫 번째 개혁시장”
  • 고훈
  • 등록 2016-01-13 13:28:00
  • 수정 2016-01-19 04: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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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영훈 익산시장 예비후보 인터뷰

익산참여연대, 좋은정치시민넷, 악취해결시민대책위 조직한 ‘설계자’
민주화운동·노동운동·시민운동 34년 올곧게 해온 정직과 신뢰의 ‘아이콘’







▲익산시장 재선거에 출마하게 된 동기?
시민들에게 희망이 없다는 점이 가장 컸다. 최근 익산 지역 경제가 매우 좋지 않다. 안 그래도 시민들은 고단한데 들리는 소식마저 암울하니 얼마나 속상하겠나. 익산이 쇠퇴도시, 부패도시라고 언론에 낙인찍혔다. 작년 지방선거부터는 부채문제가 심각하게 부각됐다. 인사고과 조작 의혹으로 시청이 사법기관에 압수수색 당했다. 시장부터 공무원들까지 줄줄이 조사받는 상황도 이어졌다. 여기에 결정타로 시장마저 선거법 위반으로 낙마했다.

그래서 개혁 시장에 대한 요구가 지역사회에 높게 일었다. 시민사회에서도 이번에 시장후보자를 내자는 의견이 많았다. 지난 여름부터 시장 후보 요구를 받았고 고심 끝에 출마하기로 결정했다. 익산에서 시민운동을 30년 넘게 지역에서 쭉 해왔다. 지역에서 받은 명예, 경제적 부, 사회적 지위, 이 모두가 지역에서 받은 것이고, 시민들이 부여한 것이다. 시민들의 요구가 있다면 지금은 시민들에게 내놓아야 될 때라고 봤다.



▲시민운동가 출신 정치인에 대한 우려섞인 시선이 있다
정치인 평가를 할 때, 시민운동가 출신들은 평가가 아주 좋다. 시민운동가 출신이 정치를 잘할 수 밖에 없는 것이 시민운동 속에서 이미 훈련이 되어있기 때문이다. 익산만 놓고 봐도 몇 사람 없지만 손문선, 임형택 의원 평이 좋지 않나. 따라서 문제가 전혀 안 된다. 시민운동이나 정치나 목적은 시민을 이롭게 하고 편안게 하고 행복하게 하고 웃음을 찾아주는 일이라는데서 같다. 영역과 성격이 다를 뿐이다.



▲박경철 전 시장도 시민운동가 출신인데
박경철 전 시장을 시민운동가라고 하는데 동의하지 않는다. 본인의 주장일 뿐이고 언론에서도 그대로 쓰는 것일 뿐이다. 정치에 나오는 순간 시민운동가가 아니고 정치인이다. 더군다나 12번 선거에 나올 정도면 노회한 정치인이다.

시민운동가라는 게 말이 안 되고, 개념이 잘못 쓰인 거라고 본다. 나는 처음 출마하지만 시민운동가 이영훈이 아니고 정치인 이영훈이다. 지난 삶은 시민운동가였지만 출마하겠다 하는 순간부터 정치인 이영훈으로서 삶이 시작된 것이다.

박 전시장과 나의 차이를 굳이 분류하자면, 박 전 시장은 민원해결식의 시민운동을 했고, 나는 정책과 대안 부문에서 시민참여로 풀어내는 방식의 시민참여형 시민운동을 해왔다. 그러다보니 내가 지나왔던 단체들은 회원들이 다 남아있다. 익산참여연대 회원이 500여명, 좋은정치시민넷도 200여명 회원이 있다.

1인 시민운동을 했으면 이렇게 회원들이 남아있지 않을 것이다. 사람과 단체가 남아 지역에서 계속 시민운동의 역할을 해오고 있다. 다시말해 익산 시민운동의 씨앗을 뿌리고 싹을 틔워오는 작업을 지속적으로 해왔다. 그런 면에서 전 시장과는 다르다고 생각한다.



▲익산의 최대현안과 해결책을 제시한다면
익산시민들 자존심이 너무 상했다. 사람이 조금 덜 먹고 덜 입고 살 수는 있겠지만, 자존심 상하는 건 대단히 큰 문제라고 본다. 익산시가 부패도시로 언론에 나가면서 정점을 찍었다. 이제는 갈 때까지 가서 전국 최하위의 부패도시로 낙인이 찍혔다. 시에서는 제일 말단이고 시군을 다합쳐서도 150여개에서 밑에서 3번째다. 처참할 지경이다. 이 부분을 우선적으로 바로 잡겠다. 


꼭 부패라는 오명을 씻겠다는 게 아니라 익산시가 새롭게 거듭나는 과정에서 어떤 동력이 나와야 하는데 그 동력이 나오려면 공직사회가 바로잡히지 않고서는 어렵기 때문이다. 익산시엔 여러 세력과 힘들이 있는데 그 중 공직처럼 큰 힘이 있는 곳이 없다. 공직사회는 정규직 전문인력만 1500명이다. 더군다나 예산은 1조원 가까이된다.

그러니까 익산시 공직사회가 제대로 서면 이 인력과 자원으로 익산시에 새로운 바람, 건강한 기운을 만들어 낼 수 있다고 보는 거다. 첫 출발은 공직사회를 바로 잡는 것부터 시작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선 시장의 마인드가 중요하다. 줄세우지 않고 금품향응 받지 않고 정직하고 청렴하게 하겠다. 먼저 시장실 오픈하고 CCTV 달겠다. 24시간 감시체계를 두고 인사비리 청탁을 아에 못하게 하겠다. 국과장이 청탁 안하면 자기 부하직원들 인사고과 점수 매길 때 그렇게 하지 않을 거 아닌가.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아지듯이 서서히 내려간다고 생각한다. 한 6개월이면 가능하다고 본다.

제도적 장치도 필요하다. 관행이나 문화를 바꾸는건 오래 걸린다. 메시지가 제대로 전달이 안 돼서 혹시라도 비리가 발생 하면 일벌백계 해야 된다고 본다. 그러면 빠르게 일소되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다.



▲익산 미래 발전에 대한 비전은
작년 선거때 부채가 가장 큰 현안이고 쟁점이 됐다. 부채문제는 명확하게 짚어야 한다. 액수부터 제각각이고 원인도 다르게 보고 있다. 이문제가 해결이 안 되면 익산시가 신규사업을 벌일 때마다 발목을 잡게 된다. 부채는 꼭 털고 가야한다.

또 하나는 인구 문제다. 전주·군산은 인구도 늘고 경제력도 높아지는데, 반면 익산은 경기는 침체되고 인구는 줄고 다 떠나고 있다. 결국은 경제력인데 익산의 성장동력이 사실 모호하다. 시가 기업유치를 한다고 하는데 그에 따른 재정·고용·소비 등 어떤 영역에서든 파급력이나 크질 않다. 전방 등도 200억 받아가는데 현지고용도 140명 밖에 안 되고 원래 MOU협약과는 맞지 않고 지역경제효과에 대한 노력도 상당히 미미하다.

그럼 어떻게 경제문제를 풀거냐. 기본방향에서는 익산은 식품도시로 가야된다. 국가식품클러스터도 있고 하림 등 닭과 관련된 산업, 지역향토음식과 농작물도 많이 발전돼있다.
이를 하나의 틀로 묶어서 식품을 화두로해서 큰 경제의 틀을 짠다면, 미래지향성·지역특성· 현실적인 힘이 같이 삼박자가 돼서 잘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소상공인이나 자영업, 비정규직 이런 부분들은 지역소비가 되지 않는데 문제가 있다. 지역에서 아무리 경제를 키워서 부가가치를 창출해도 쓰는데를 나가서 써버리면 지역경제에 전혀 도움이 안 된다. 지역에서 소비가 이뤄지게 하려면 가장 좋은 방법은 지역순환경제를 위한 하나의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다른 지자체에서 많이 하는 게 협동조합, 마을기업 등 사회적 경제기업이다. 완주만 해도 모범지자체로 타지자체에서 선진견학을 온다. 그런데  산은 눈치만 보고 미적대고 있다. 사회적 경제는 이미 거대하고 미래지향적인 흐름이다. 우리도 늦었지만 타야된다. 지금이라도 빠르게 흐름을 타서 지역특성화시키면 승부가 된다. 그 부분이 보강적으로 같이 결합을 해야 경제적 큰 틀이 하나 완성된다.

또 하나 중요한게 문화다. 우리 지역의 역사문화하면 백제고도문화권, 근대문화권으로 나눌 수 있다. 유네스코도 지정이 됐는데 근대문화권에 대한 개발도 필요하다. 익산은 평야지역이고  군산으로 많은 수탈이 이뤄졌다. 근대문화유산을 자원으로 외부관광객들이 많이 유입될 수 있도록 해야된다. 시민들이 자부심을 많이 느낄 수 있도록. 해마다 투자가 되고 있긴 한데 그때그때 땜질식으로 이뤄지다보니 축적되고 확산되지 못하고 있다. 전체적인 그림을 만들어나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세 번 제적되고 한 번 투옥되는 등 민주화운동과 노동운동, 시민운동을 평생 해왔다
80년대는 엄혹했던 시절이었다. 원광대 대학생 민주화운동은 80년에 선배들이 다들 잡혀들어가고 81년에 잠재되어있었다. 82년에 내가 원광대학교 치과대학에 입학했고 1년간 준비를 통해 학원자율화가 시작된 83년부터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을 동시에 시작을 했다. 단절된 원광대 민주화운동의 계보를 이은 셈이다.

노동운동은 창인동 성당에 카톨릭노동사목 ‘익산 노동자의 집’에서 운영하는 노동야학에서 강사로 2년간 활동 했다. 집시법 위반으로 항소심서 1년 실형이 확정돼 10개월간 복역했고 87년 6.29 선언으로 대전교도소에서 가석방됐다.

전북지역 청년구속자협의회 의장으로 활동하며 전라북도에서 민주화운동을 계속적으로 하던 중 87년 이후, 80년대말과 90년대 초에 노동조합이 많이 결성됐다. 89년부터는 익산노동교육연구소에 있으면서 조합 결성과 활동 등에 대해 노동 교육을 하고 다녔다.

90년초가 되자 시민운동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높았다. 이제는 기존의 민주화운동이나 노동조합운동쪽 보다는 다양한 계층의 주민들이 시민참여형 운동의 형태로 익산도 준비해야한다고 내다봤다. 그래서 91년에 글방갈숲마을을 만들었다. 글방갈숲마을에서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시민운동의 힘을 키우며 익산생활문화원, 익산참여연대 활동을 넓혀갔다.

그렇게 쭉해오다가 2011년도에는 지역정치가 바뀌어야 되는데 시민참여형 정치운동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새로운 모델이나 개념을 내부적으로 1년간 치열한 토론과 고민 끝에 좋은정치시민넷을 만들었다. 좋은정치시민넷은 지역정치문화나 체질을 바꿔내고 시민의 요구에 부응하는 정치신인을 양성하고 지원하는 역할을 하는 지역정치시민단체다.

이렇게 3년을 하고 작년 지방선거까지 했는데 좋은정치시민넷 회원이 150명 정도 된다. 손문선 회원이 무소속으로 나와서 시의원이 됐었고, 제가 대표하면서 임형택 희망연대 상근자를 뽑아서 시민넷 사무국장을 하면서 시의원을 만들어냈지만 아직 부족하다.

또한 주민참여예산제, ‘자전거 타기 좋은 도시 등 정책제안활동도 꾸준히 해왔다. 특히 주민참여예산제는 전국에서 4번째로 참여연대 대표 재직 당시 제안했고 시가 조례로 제정했다. 주민참여예산위원회 위원장을 1~2기 맡았는데 당시 이한수 시장과 참 많이 싸웠다. 집행부가 형식적으로만 만들려고 해서 권한을 줘야된다고 민관거버넌스 개념을 처음 제시했다.

근래엔 공립단설유치원 공론위 의장으로 활동하기도 했고 악취해결시민대책위도 만들었다. 익산지역의 현안사업들은 다 피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참여해왔다.



▲이번 선거운동에 임하는 자세는
정치가 바뀌기 위해서는 정치인의 마인드가 바뀌어야 된다. 정치철학이나 가치가 달라야 된다. 그런데 보통 정치인들의 시작은 자기가 되고 싶은 게 우선이다. 다른 분들은 그것을 개인의 권력의지라고 표현하시더라. 저는 그렇게 가는 건 아니라고 했다. 그렇게 출발하면 과정과 끝이 권력욕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게 된다. 그런 정치역사를 수없이 겪어보지 않았나.

작년 지방선거에서 좋은정치시민넷 출신 입지자들에게 요구했던 것이 뭐였냐면, 출발을 개인으로 하지말고 시민넷에서 함께하는 사람들의 노고에서 출발하고 그분들과 끝까지 함께하는데서 해야된다는 것이었다. 이것을 다른 방법으로 표현하면 시작을 시민에게 두라고 했다. 출발에서 차이가 있다고 보는 거다. 그래서 집단의 권력의지가 대단히 중요하다.

집단이 상황을 변화시키고 원하는 쪽으로 가고자 하는 요구가 있어야 거기에 걸맞는 후보를 찾게 되고 그 집단이 후보를 세워서 만들어가는 과정이 되면 정치가 바뀔 수 있다고 생각을 했다. 아직 그런 사례가 많지 않은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선거과정부터 당선이후까지 전 과정이 달라야 된다. 기본적으로 살아온 삶도
그렇지만 선거운동 과정에서 지키고 싶은 건 딱 두가지다. 선거캠프원들에게도 이 두가지를 당부했다. 첫째, 선거 전 과정에서 돈과 거래하는 건 절대 안 된다. 둘째, 정직과 개혁이미지로 시민 믿고 가자.



▲안철수의 국민의당으로 출마를 선언했다
처음 시작은 무소속으로 나왔는데 얼마 안 있어 안철수 대표가 탈당을 했다. 2년전에 안철수 대표가 새정치연합을 만들 당시, 내일실행위원을 해본적도 없는데 중간에 영입이 됐다. 그래서 새정치연합도당집행위원하고 지방선거공천심사위원을 했었다. 그것이 인연이 돼서 안철수 대표의 국민의당 창당 작업에 참여하고 있다. 조직회의 지역담당으로 실무를 맡았고, 중앙당창당발기인이면서창당조직작업도 함께 하고 있다.



▲시민들에게 한 말씀
지역경제가 어렵다보니까 시민들의 삶도 굉장히 고단하다. 들리는 소식도 암울하고, 웃음마저 없다. 지역에 활력이 없고, 생기를 잃었다. 그러나 정치가 바뀌면 많은 게 바뀔 수 있다.
선거는 정치를 바꿀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시민들이 이번만큼은 인연이나 사적인 것에 끌리지 말고, 제대로 일을 할 수 있는 인물을 잘 판단해서 투표하게 되면 익산이 다시 거듭날 수 있는 활력을 갖게 될 것이라고 본다. 저 이영훈 후보도 시민들의 웃음을 되찾아주고 도시에 활력을 주는데 앞장서겠다.






<이영훈이 걸어온 길>

1976년  이리초등학교 졸업
1979년  이리중학교 졸업
1982년  군산제일고 졸업/ 원광대학교 치과대학입학
1983-84년  카톨릭노동사목 익산 노동자의 집 노동야학 강사
1984년  원광대학교 학원자율화추진위원회 활동
1985년  원광대학교 민주투쟁연합 의장
1986년  집시법위반으로 구속. 항소심서 1년 실형 확정.(10개월복역)
1987년  6,29선언으로 가석방(대전교도소)
1988-89년  전북지역 청년구속자협의회 의장
1989-91년  익산노동교육연구소 연구위원
1993년  글방 갈숲마을 대표
1996년  익산생활문화원 창립 및 운영위원
1996-8년  전북지역 새시대노동자회 회장
1999-2013년  익산참여연대창립 및  운영위원
2004년  민주화운동관련자인정 및 명예회복
2005년  전북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운영위원
2007-2010년  익산참여연대 대표(5,6대)
2008-2010년  익산시민참여예산위원회 위원장(1.2기)
2012-2014년  좋은정치시민넷 창립 및 대표
2015년  익산공립단설유치원 공공토론위원회 의장

<현재>
우리들치과 원장
국민의당 중앙당 창당 발기인
익산악취해결시민대책위원회 상임대표(2013~)
남이랑북이랑 운영위원장(2014~)
익산참여연대 지도위원(2014~)
좋은정치시민넷 지도위원(2014~)





이영훈 “익산 바꿀 첫 번째 개혁시장이 되겠다”

이영훈 우리들치과 원장(국민의당)이 4월에 치러지는 익산시장 재선거에 공식 출마를 선언했다. 12일 이영훈 원장은 익산시청 상황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힘든 익산을 치료하기 위해 익산시장선거에 출마한다”고 밝혔다. 이 원장은 “활력을 잃어버린 익산이 위기를 맞고 있다”고 지적하며, “쇠퇴도시?부패도시로 시민의 자존심에 상처를 안겨 활력도 없고 웃음마저 사라졌다”도 말했다.


이 원장은 “국민의 삶을 우선으로 하는 정치로 새롭게 거듭나야 한다”며 “정권교체를 통해 공정사회로 나아가자는 국민의 여망을 모아 ‘국민의당’이 창당준비를 서두르고 있다”고 말했다. 안철수 의원과 함께 정치를 시작한 그는 새정치연합 전북도당 집행위원을 역임한 바 있고, 현재 국민의당 중앙당발기인이면서 창당조직사업에 함께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 원장은 익산의 미래 비전을 위해 ▲부정부패 해결 ▲부채문제 ▲악취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 수립 ▲산업단지 분양과 기업유치 대책 수립 ▲지역선순환의 공정경제기초 조성 ▲
▲새로운 도시브랜드 창출 ▲시민의 삶을 살피는 생활밀접형 정책 추진 ▲걱정없는 농업농촌 만들기 등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이 원장은 “첫 번째 개혁시장이 되어 익산을 바로 세우겠다”며 “낡은 정치에 때 묻지 않았고, 이권과 부패로부터도 자유롭다. 누구보다 정직하고 잘 준비된 후보로 지역을 바로 세워보라는 요구와 시민의 추대로 출마했다”고 말했다.


이 원장은 34년간 시민운동을 통해 익산참여연대, 좋은정치시민넷, 악취해결시민대책위를 조직했고 시민참여예산제부터 공립단설유치원 문제에 이르기까지 지역 현안에 대한 대안과 정책을 제안하고, 실천으로 앞장서 왔다. 지난 21일엔 이재봉 교수 등 시민 100인의 시장 후보 추대를 받은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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