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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시대의 스승 신영복 선생 별세
  • 조도현
  • 등록 2016-01-21 15:2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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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익산투데이 제자, 언론의 사명 강조




우리 시대의 스승 신영복 선생의 영결식이 지난 18일 서울 성공회대 대학성당에서 엄수됐다. 


신영복 선생은 익산투데이 제호 글씨(제자)를 지난 2008년 3월 지면창간 당시 써 주어 익산투데이는 지금까지 이 제자를 사용하고 있다. 


고 신영복 선생은 당시 제자를 주며 “익산투데이가 지역 언론으로서의 사명을 성실히 수행해 지역사회 견인차 역할은 물론, 건전한 언론문화를 창달하길 바란다”고 말하며, 2종의 제자를 보낸 바 있다. 익산투데이는 이 가운데 한 점을 신문 제호 글씨로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다.


탁이석 익산투데이 대표는 “신영복 선생님과 그동안 강연 등을 통해 관계를 맺고 있다가 창간 당시 제자를 부탁했는데 흔쾌히 수락해주셔서 고마움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고 회고하며, “고 신영복 선생님의 시대정신과 일관된 삶을 본받아 익산투데이가 익산시민의 눈과 귀가 되고 익산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신영복 선생은 서울대 경제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육사에서 경제학을 가르치는 교관으로 재직하던 중 지난 1968년 `통일혁명당` 사건에 연루됐다. 이 사건으로 무기징역형을 선고받아 20년 20일을 복역하다 1988년 광복절 특별 가석방으로 출소했다.


이후 옥중 생활의 한과 고뇌를 편지와 글로 엮은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은 필독서가 되었으며, `나무야 나무야`, `더불어 숲 1·2`, `강의-나의 동양고전독법`, `처음처럼`, `변방을 찾아서` 등 활발한 저술활동과 강연을 펼쳐왔다. 


신영복 선생의 호는 ‘쇠귀’이다. 일명 쇠귀체로 불린 신영복 선생의 글씨체는 ‘처음처럼’ ‘사람이 희망이다’ 등으로 널리 알려졌으며, 특히 참여정부 당시 국가 주요행사에 신영복 선생의 글씨가 널리 이용되었다.


신영복 선생은 지난 2014년 희귀 피부암 진단을 받아 그해 겨울학기를 마지막으로 강단에서 내려왔다. 투병생활을 이어가던 선생은 지난 15일 오후 9시30분께 자택에서 호흡이 멈춰 인근 이대목동병원으로 옮겨졌고, 당일 오후 11시47분께 최종 사망선고(향년 75세)가 내려졌다. 


신 교수의 시신은 18일 영결식이 끝나고 벽제 시립 승화원으로 옮겨져 화장됐다. 장지는 유족들의 의사에 따라 공개되지 않았다.





신영복 선생 익산투데이 제자


신영복 선생이 지난 2008년 3월3일 주신 2점의 익산투데이 제자이다. 익산투데이는 이 2점 가운데 상단 글씨를 지금까지 제자로 사용하고 있으며, 이번에 발행되는 신문에 한해 그동안 사용하지 않던 제자를 고인의 명복을 비는 마음을 담아 제자로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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