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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모르는 사이 나는,
  • 익산투데이
  • 등록 2016-12-22 14: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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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모르는 사이 나는,

십 년쯤 되었을까?
살고 있던 전셋집을 비워달라는 전갈이 왔다.
임대인이 매매를 하겠다는데 매매계약을 체결하기엔 이제 겨우 다 갚아가는 빚에 이어 또 빚을 내야 할 처지라서 필자로선 감당이 되지 않았다.
하여 두어 달 말미를 얻어놓고 생활정보지를 훑기 시작했다.
여러 곳의 부동산 사무실과 지인들에게 집을 구하노라 말을 넣어놓고 일주일쯤 지나자 하나 둘 전화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일찍 찾아온 여름은 뙤약볕에 콩을 볶기 시작하는데 두세 군데를 헤매고 돌아온 아내가 불에 덴 부아를 찬물에 타 삼키자 온몸에 두드러기가 돋는다.
자외선 차단제를 뚫고 아내를 구워버린 햇살이 양팔 가득 가려움증을 안아 보낸 저녁, 냉장고에 넣어둔 아이스 팩을 수건에 싸 건네주며 미안함을 달래려고 딴청을 피우는데 어둠은 멀리서 어찌 그리 미적미적 오던지......
보증금 작고 월세가 많거나, 전세금이 높거나, 아이들의 통학거리가 멀거나, 수리해야 할 부분이 많이 보이는데도 수리하지 않고 내놓겠다거나, 알맞은 곳은 쉬이 나타나지 않는데 임대인의 이사날짜 맞춰달라는 독촉 전화가 연거푸 들려온다. 염려 마시라 날짜 지켜주겠다는데 웬 걱정을 그리 해쌓는지 참 모를 일이었다. 곡절을 딛고 날짜에 맞추기 위해 좀 무리다 싶은 전셋집을 계약하게 되었다. 2년 임대계약서에 도장을 찍고 온 아내가 눈물 글썽이며 하던 말이 지금껏 잊히지 않는다.
‘집 좀 깨끗이 써 달래! 셋집 사는 사람들은 어찌 그리 하나같이 집 아낄 줄을 모르느냐!’는데, 참 어이없고 정말 싫더라!
누구나 임대인도 임차인도 될 수 있다. 어느 누가 일시적으로 우위를 점했다 하더라도 상대방을 하대해서야 되겠나 싶다.
내가 모르는 사이 나는, 누구에게 어떤 사람으로 비치고 있을까? 
그때의 단상을 기록한 졸시 한 편을 소개한다.






   
            봉인

여섯 번째 임대차
계약서에 서명하던 날

집 좀 깨끗이 써 주세요!
셋집 사는 사람들은 어쩜 그렇게 하나같이
집 아낄 줄을 모르나 몰라!

도장 대신 붉은 입술로 계약서에 봉인하는 집주인 아주머니

열쇠는 건네받았으나
사용권은 자물려
시계며 사진틀이며 걸리지 못한 또 한 가지
자존심, 작은 방에 누워있다

내 벽에 쾅,쾅,
못 치는 날 있기는 할 것인가

눈 뜨면 머리 찧는 현실의 벽에 쾅,쾅
망치질이다

       - 자작시, 봉인, 전문 -
       < 시선,50호, 2015,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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