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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달팽이
  • 익산투데이
  • 등록 2017-03-08 19:19:00
  • 수정 2017-03-08 19:5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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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조석구



민달팽이

보건복지부령으로
종합병원에 권역별 치과응급실 운용지침이 하달된 후
자정을 넘긴 야심한 시각
치과병원 응급실에 민달팽이 들었다
서천군의 아흔 살 송모 할머니
병원을 내 집처럼 드나들며 
짊어지고 다니던 집 한 채
조곤조곤 헐어 병원에 주었다는데 
얇디얇은 몸뚱어리 종그려 통증으로 주저앉으며 그런다
이십 년 넘게 드나들었슨께 여그 - 가 내 집이여!

시집 온 서천군 어느 마을
팽나무 둥지를 떠나 이소한 조막만한 새들은
날갯죽지 짱짱히 날다 가는데
동네 텃밭을 벗어나지 못한 구십 년
고부라져 달팽이 몸이 되어가는 저 할미
삶의 이파리에서 굴러 떨어지기 일쑤다
다급하게 이장이며 동네 손자의 등허리에 업혀 올 때마다
안테나 길게 뽑고도 무뎌진 촉수는
이승의 신호 저승의 신호 둘 다 잡아채지 못 한다
내려놓은 옛집 찾아 느릿느릿 더듬어 온 촉수에 문득
최신형 네비게이션을 달아 드리고 싶어지는데
 
젖몸살 아닌 꽃몸살
합죽합죽 밀렁밀렁 물렁물렁 앓다 가겠노라
석양 저편에 통보를 해두자는 것인가
면사무소에서 발행한 차상위 행정봉투를
지그시 밀어놓는다
는적는적 민달팽이 지나는 길목
거친 것들 편편히 치워 드리면
씹어도 아프지 않을 말씀 한 자락 주섬주섬 섬길까
당직의의 문진을 섬기는데
협심증, 당뇨, 고혈압을 앞세운 짜잔한 것들이
그녀의 잇몸에 웅크려 앉아
여그는 내 집이여, 할미 집 아니랑께!
그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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