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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심(恒心) 십년을 항산(恒産) 익산으로
  • 탁이석 기자
  • 등록 2017-03-08 19:41:00
  • 수정 2017-03-08 19:5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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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미들이 만드는 신문 익산투데이가 창간 십년을 맞이했습니다. 지난 2007년 인터넷으로 출발한 우리 신문은 다음 해인 2008년 3월 지면 신문을 창간 해 익산 시민의 눈과 귀가 되었습니다.


‘자본과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운 독립 언론’을 모토로 출발한 익산투데이는 창간 정신을 유지하기 위한 ‘항심’을 잊지 않았습니다. 맹자는 양혜왕과의 만남에서 항산이 있어야 항심을 가질 수 있으며, 오직 선비만이 무항산(無恒産)에서도 항심을 가질 수 있다고 했습니다.


시대의 스승 신영복 선생은 익산투데이 창간 당시 제자(題字)를 주셨습니다. 신영복 선생의 삶이 여일(如一)했듯이 익산투데이도 지난 십년을 여일하고자 노력해 왔습니다. 이 여정은 무항산 속에 항심이 요구되는 지난(至難)한 세월이었습니다.


언론사들이 흔히 쓰는 ‘정론직필’은 당연하지만 독자들은 이를 믿지 않는 것이 현실이 되었습니다. 언론 매체의 홍수 속에 ‘신뢰’ 역시 홍수 속에 떠밀려 간지 오래 되었습니다. 살아남기 위한 각자도생, 자본·권력과 결탁을 통해 밥벌이에 나선 생계형 언론이 만든 종잇장이 길거리에 나뒹굽니다. 그들이 만든 신문은 독자용이 아니라 자본과 권력을 향해 나부끼는 깃발입니다.


지난 십년을 돌이켜 보면 익산투데이 역시 자화자찬은 얼굴 뜨거운 짓입니다. 평소 염치(廉恥)있는 보도를 견지하기 위해 노력해 왔지만, 무항산을 핑계 삼아 몰염치를 자행해 왔는지를 돌이켜봅니다.


인구 30만의 익산에서 언론이라는 간판을 걸고 어줍지 않은 권력의 칼날을 휘둘렀는지도 돌아봅니다. 이로 인해 상처받고 고통 받는 이가 있었을 겁니다. 좀 더 살피고 좀 더 듣는 과정이 더 해졌으면 받지 않을 상처일 겁니다. 이는 창간 초기 정신을 망각한 데서 연유한 것으로 맹성(猛省)이 요구되는 부분입니다.


지난 십년은 독자여러분의 사랑이 있어 가능했습니다. 지난 시간 동안 조건 없이 새벽에 신문을 돌리고 후원금을 내고 운영위원회에 함께 해 주신 분들이 계십니다. 제대로 된 신문을 만들기 위해 창간 당시 물심양면(物心兩面) 힘을 모은 분들이 계십니다. 이 분들께 아직까지 아무 것도 해 드린 것이 없습니다. 앞으로도 해 드릴 게 별반 없지만 단지 하나 ‘신문 하나는 제대로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할 겁니다.


지난 밤 멋있는 창간 십년 기념사를 쓰고 위해 전전반측(輾轉反側) 했지만 결론은 반성(反省)이었습니다. ‘척박한 현실 속에서 십년을 운영해 왔다’는 자랑을 하고 싶었지만 내세울 것은 별로 없고 부끄러움만 넘쳐 났습니다. 무항산 속에 항심을 잊지 않았지만 선비는 되지 못했습니다.


익산투데이는 앞으로 십년을 ‘항산 익산으로’ 정하고 일로매진할 것입니다. 항상 일정한 소득이 있는 익산은 예의와 품격이 넘쳐나고 풍성해 질 겁니다. 이를 위해 익산투데이는 언론 본연의 기능인 감시·견제와 더불어 대안제시에 매진하겠습니다.


수평적인 관계를 통해 시스템이 작동하는 익산을 만들겠습니다. 지연·혈연·학연에 의한 관계가 익산 미래 발전을 저해하고, 언론의 기능을 망각하는 ‘끈’이 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삶이 즐거운 도시 익산’이어야 합니다. 지난 세월 익산을 돌아보면 경제적 풍요를 이유로 각종 개발이 횡횡했지만 결국 시민의 부담으로 전가되었습니다. 삶이 즐겁기 위해서는 항산과 더불어 수반되어야 할 부분이 많습니다. 교육·문화와 더불어 종교가 상생하고 신념이 꽃을 피우는 도시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경칩이 지나니 바람이 따스합니다. 사통팔달 익산처럼 익산투데이는 독자여러분의 마음도 고루 열리는 따스한 세상을 만들어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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