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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 태냄이 엄니
  • 편집국
  • 등록 2017-06-12 17:5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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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 조석구 / 전북작가회의

 

태냄이 엄니

 

왜정부터 동란까지
못 볼 꼴 얼마나 많이 보고 당해서 그랬을까요
어른이나 아이나 태냄이네로 부르는 그 집에는
가족 구성원 태반이 중복장애였는데요
밥 할 줄을 몰라서 그런다고도 하고
밥 하는 걸 봤다고도 하는 태냄이 엄니는
사시사철 눈비 무릅쓰고 밥 얻으러 댕겼는데요
왼손엔 장대 짚고 오른손엔 옴박지 옆구리에 끼고
장갑도 없이 손에다가 광목을 둘둘 말고 댕겼는데요
장대로는 달려드는 개를 물리고
발뒤꿈치 쪼아대는 장닭도 물리고
가을이면 감낭구의 홍시를 따 우는 애기에게 주기도허구
놀리고 드는 꼬맹이들을 훠이훠이 쫒기도 했는데요
꼬맹이들이 막무가내로 막아서서 일본말 좀 해 보라
길을 트지 않을 때면
예수 믿는 것들이 그러믄 쓰간디
누구네 집 누구, 누구네 집 누구, 내 다 안다
어른들한티 일러줄꾸마 그러면서도
이찌 니 산 시 고 로구...쥬이찌 쥬니...니쥬 산쥬 욘쥬...
숨도 참아가며 숫자를 세어 보이다
지나는 어른들이 네 이놈들! 호통 치는 소리에
꼬맹이들 뿔뿔이 흩어지고서야 길을 나섰는데요
반경 시오리 애경사를 줄줄이 꿰고 있어
어른들이 호적계장이라는 칭호도 붙여주셨지요
새벽 종소리 걷힌 여명에 쓰러진 노인도 구하고
논밭두렁 헤집고 다니는 송아지도 일러주고
새 생명의 탄생도 일러주던 늦으막이 알아챈 천사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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