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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먹고 살려고?
  • 편집국
  • 등록 2017-12-13 10: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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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인숙 / 익산여성의전화 부설 가정폭력상담소장


중학교 때부터 알던 친구와 통화를 했다.


“더 이상 못살겠어. 그 긴장감을 견디기 힘들어. 원룸 한 채 얻을 값만 받아서 나오려고”


“어떻게 살려고? 겨우 그 돈 가지고 어쩌려고”


이혼이야기를 꺼내는 친구에게 명색이 상담원이라는 내가 한 극 현실주의 반응이었다.


여성의 노동은 저평가 되어 있어 남성이 100만원 번다면 여성은 63만원 버는 꼴이다. 40대 재취업여성은 하루 열 시간 꼬박 일하고 한 달에 3~4일 쉬는데 160만원을 받는다.


이 돈에서 4대보험을 공제하면 150만원도 안 되는 수입으로 3인 가족이 살아야 한다. 이런 여성 가장을 여성의전화에 일하면서 흔히 보게 된다.


여성의 급여는 여전히 생계 부양하는 남성가장이 있다는 전제로 산정되고 있다.


그렇다면 혼자 가정을 책임지고 있는 여성가장의 급여는 어떻게 해야 할까? 무엇이 여성의 삶의 구조를 이렇게 취약하게 만들었을까? 전업주부인 내 친구는 이혼 후 어떻게 먹고 살아야 할까?


남녀를 중심으로 조직된 사회에서 여성은 남성보다 열등한 존재로 평가되어 더 적은 임금, 불공평한 기회, 성적 안전도의 위협을 경험한다.


이것은 여성이 어느 한 남성에게 의존해야 하는 사회 구조를 만들며 이런 구조 속에서 여성에 대한 소유권과 통제권은 친밀한 관계의 남성인 아버지나 남편에게 주어진다.


이렇게 취약한 위치에 있는 여성이 통제권을 가진 자에게 폭행을 당하거나 또는 폭행을 당해도 그 상황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결과일수 있다.


현실에서는 이런 사회구조는 눈 감고 오직 피해여성만을 물고 늘어진다. 남편에게 학대 받는 여성이 듣는 질문은 딜레마의 연속이다.


왜 참고 사는가, 왜 참지 못하는가, 왜 폭력을 유발하는가, 왜 변화시키지 못 하는가의 질문을 한 번에 받는다.


왜 참고 살까? 30대 이상 경력단절 여성이 다시 취업하려할 때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현실을 보면 된다. 한마디로 이혼 후 먹고 살길이 막막하다.


왜 참지 못하는가? 스스로가 인간이라는 사실조차 잊어야하는 학대의 고통을 어떻게 견딜 수 있을까.


왜 폭력을 유발하는가? 누구의 시각에서 유발일까, 남편이 새벽까지 늦게 놀다가 들어와서 다음날 아이들 밥을 챙겨주지 못하면 맞는가?


그렇지 않다. 아내역시 마찬가지여야 한다. 정당한 폭력이 있는 것이 아니라 폭력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이상한 사회가 있을 뿐이다.


그렇기에 남편의 학대로 사망한 여성은 살인이 아니라 사고사가 되고 학대한 남편은 얼마나 아내가 힘들게 했으면 그랬겠냐고 위로 받기도 한다.


질문은 바뀌어 져야 한다. 무엇이 피해자로 하여금 무엇이 참고 살 수밖에 하는가? 무엇이 집을 떠날 수밖에 하는가? 무엇이 신고를 망설이게 하는가?


그래서 문제가 되는 그 ‘무엇’을 바꾸어야 한다. 어떻게 먹고 살지에 대한 걱정으로 폭력의 현장에 그대로 머무르는 일은 없도록 해야 한다. 


이 오래되고 아득한 이야기를 친구에게 해야겠다. 그래도, 나와야 한다고. 거기에서는 더 이상 안 된다는 말을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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