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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 우울증의 한의학
  • 편집국
  • 등록 2017-12-13 10: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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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성 / 이재성 한의원 원장


왕년에 잘 나갔다는 ‘왕년’ 님.

1954년생 남자. 초등학교 선생님으로 올해 퇴직하셨다.

퇴직  6개월 지나 우울증이 왔다.

우울한 기분이 종일. 뭘 해도 재미가 없었다.


밥맛이 없었다. 성욕도 없었다.

두 달 지나도록 변하지 않았다.

잠이 잘 안 왔다. 살이 빠졌다. 

잘 놀랬다. 친구가 아프다는 전화만 받아도 놀랬다.

스스로가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았다.

사람들 앞에 나서기를 두려워했다.

기운이 없었다. 온 몸에서 기가 다 빠져 나간 것 같았다.

기억력이 확 나빠졌다.

하루면 몇 번씩 건망증 때문에 빼먹는 일들이 발생했다.


보약 지으러 한의원 갔다. 받은 진단은 탈영실정증.

지위를 상실했을 때 가치 없게 느껴지고 정신줄을 못 잡는 병이 탈영.

돈을 잃었을 때 우울감에 빠져 밥도 잘 못 먹는 병을 실정이라 한다.

합쳐서 탈영실정증.

은퇴 우울증은 아주 오래된 병이었다.


원지·석창포 라는 한약이 쓰인다. 둘 다 정신 보약이다.

정신 보약에다가 몸 보약을 합한다.

향부자라는 한약을 갈아서 소금과 함께 양치질 하는 것도 동의보감에 나온다.

치료기간은 3개월이 기본이다.


성욕 떨어졌다고 남성 갱년기로만 생각하면 안 된다.

은퇴라는 인생사 큰 스트레스가 원인이다.

퇴직하고도 살아야 할 날이 30년일 줄 몰랐다.

부모 봉양, 자식 결혼 뒷바라지하는 밑받침 세대가 될 줄 몰랐다.

자식 결혼하면 전셋집은 해주는 게 보통이 될 줄 정말 몰랐다.

스트레스부터 몸 증상으로 진행한 거다.

정력제로 성기능만 좋아져서는 떨어진 밥맛이 쉽게 돌아오지 않는다.


은퇴 스트레스를 등산·낚시·운동으로 풀라는 권유가 있다.

지위와 돈을 잃어 생긴 병이다.

낚시가면 한두 달만 좋다.

끝내 허전한 가슴을 채울 수 없다.
지위는 포기해야 한다.

선생님이라 불리다가 아저씨라고 불리는데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

또  직장에서 잃은 지위를 집안에서 챙기려 하지도 말아야 한다.

삼시세끼 밥상 받을 생각을 하지 말아야 한다.
돈은 적게라도 챙겨야 한다. 벌 수 있으면 벌어야 한다.

63세는 아직 노인도 아니다.

적은 돈이라도 벌면 우울증까지는 안 간다.


돈 전문가들의 조언은 구체적이다. 쓰는 돈을 줄이라 한다.

뻔뻔하지만 경조사부터 빠지라 한다.

집에 차가 두 대면 큰 차 한 대를 팔라 한다.

더 중요한 조언은 노후 대비 5억이 필수란 말에 속지 말라는 거다.

5억 없어도 잘 사는 사람들이 더 많다고 한다.

씀씀이 줄이면 충분히 살 수 있다고 한다.


은퇴로 인한 지위와 돈 상실은 아내에게도 크다.

남편이 직장 다닐 때 아내는 집안에서 일정을 맘대로 했다.

혼자 먹는 밥은 상 안 차리고 먹었다.
그런데 집안에 상사가 생겼다.

간섭하지 않아도 충분히 잘해 온 30년 경력 가사다.

상사가 생기면서 지위가 내려앉았다.

밥 챙기는 일이 매번 신경 쓰인다.

나이 들면 집안일에서 자유로워질 거라 생각했었다.


돈 걱정도 더 한다. 남편처럼 주머니에 잡히는 대로 써온 돈이 아니다.

가계부 써 가며 꾸려왔다. 수입이 없으니 지출을 뭘로 할 것인가.

은퇴 우울증을 조사했더니 아내들이 훨씬 많았다.

낚시도 술도 친하지 않은 문화 때문에 그렇다.
집안일을 반반 하는 게 답이다.

그러면 아내는 공동 가장이 된다.

취미활동도 같이 할 수 있는 게 좋다.

취미를 같이 하면 가족 간 소통이 된다.


긴장이 줄어든다. 걱정이 줄어든다.

걱정이 계속되는 게 우울증이다.

하루아침에 이런 훌륭한 남편이 될 수 없다.

원래부터 집안일 같이 하는 게 몸에 배어야 한다.
이른 나이에 KT를 명예퇴직하고 주택관리사하시는 분이 있다.

KT보다 월급은 적지만 10년 더 일할 수 있어 옮겼다 한다.

명예퇴직으로 돈도 챙겼다.

주택관리사가 쉬운 자격증은 아니다.

성공한 은퇴도 있다는 거다.


생각이 과거에 붙들리면 우울증 된다.

왕년에는 잘 나갔는데... 하고 있으면 초라해진다.

또 생각이 미래 걱정에 꽂히면 불안 된다.

현재를 사는 것이 마음 편하다.

은퇴한 사람도 현재가 있어야 한다.

돈 적더라도 출퇴근 있고 사람들과 만나면 현재에 살아진다.

그래서 은퇴 후 새 직장을 가진 분들에게 우울증이 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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