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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의 행복일까?
  • 편집국
  • 등록 2018-01-31 11: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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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윤정 / 익산여성의전화 회원


택시를 탔다. 양손에 비닐봉투를 든 내게 택시기사는 뭔 도시락을 그렇게 사가냐고 궁금해 했다. 직장 동료들과 먹을 반찬이라는 내 말에 “요즘 여자들은 참 편 해졌어요”라고 한다.


그 말에 수긍이 가면서도  남자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해 “남자들이 편해진 건 뭐가 있을까요” 질문했다. 답변은 미리 준비한 듯 줄줄이 읊어졌다. 요즘은 남자들이 살기에 더 힘들어졌다. 거기에 비해 여자들은 옛날에 비해 너무 세졌다. 옛날에는 불만이 있어도 가정을 위해서 속으로 참거나 온순했는데 요즘은  자기주장을 세게 한다는 택시기사의 말을 한참이나 들어야 했다.


기사님이 가부장적이구나 싶어 말을 섞지 않으려하다 행동하지 않으면 변화되지 않는다는 생각에 “그거는 옛날엔 말도 못하고 자기를 희생했다는 건데 힘들지 않았을까요?”라고 했더니 “그건 좀 그랬겠지만 요즘처럼 가정이 깨지진 않았죠”라고 한다. 가정이 깨지지 않아서 다행인걸까? 그건 누구의 행복일까?


우리 도처엔 누군가의 희생이 있었기에 굴러가는 삶이 많이 있다. 우리는 내 일이 아니라고 외면하고 내 마음이 힘들어지니 외면하고 부수적인 이익에 적극적인 가담을 하기도 한다. 알게 모르게 가해자에게 힘을 실어주는 역할도 한다.


그러나 조금씩 인권에 대해 배워가며 여태껏 그래왔던 것에 대한 의문이 생겨나게 되었다. 왜 그래야만 할까? 저건 좀 공평하지 않다 싶어 마음이 불편해진다. 이러한 시각의 변화는 편안한 삶을 살지 못하게 한다. 상황을 편안히 바라볼 수 없고, 편안하지 않기 때문에 바꾸고 싶은 욕구가 생기고, 그것이 쉽지 않기 때문에 고민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화의 물결은 끊임없이 계속되고 있다. 어딘가에서 그 누군가는 그 역할을 감당하고 있다. 신분 사회에서 평등사회로, 남성 위주의 사회에서 남녀 평등의 사회로, 기득권의 사회에서 더불어 살자의 사회로, 심지어 터부시했던 동성애조차 조금씩 인정하는 분위기이다. 이 변화는 나 역시도 불편하지만 이해해보려고 노력하고 있다.


좋은 변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내 편안함의 상대편에 누군가의 희생이 있다는 것을 알고 같이 나누는 것이다. 내가 행복한 것처럼 내 주변의 누군가도 행복하게 만들어가는 것이고 내가 불행할 때 누군가의 행복을 나누어 갖는 것이다. 그 기쁨과 감동을 같이 느끼며 살아가는 사회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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