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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의 달 특집] 어머니 황덕순의 억척 삶은 위대하다
  • 편집국
  • 등록 2018-05-16 11: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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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고 속 1급 장애 자식, 새벽 우유배달부터 공사장 날일까지

검정고시 고교 졸업장, 요양보호사, 대형면허까지 취득 자기개발도 으뜸


익산투데이는 가정의 달을 맞아 어려운 형편 속에서 지적장애가 있는 딸을 키우며 남들 부럽지 않는 집을 장만하는 등 쉼 없는 살아온 억척 어머니이자 모범 어머니를 만났다.


그 주인공은 현재 장애인 활동보조로 일하고 있는 황덕순(48) 씨다. 고향이 대전인 황 씨는 남편 박현진(52) 씨와 결혼 후 서울에서 생활하다 90년대 초 익산에 500만원 전세살이를 시작했다.


익산 정착 후 첫 아이 헤진(28)이를 낳았는데 1급 장애아였다. 그리고 4년 후에는 둘째 혜림(24)이를 낳아 자매를 두고 있다.


결혼 후 20만원을 가지고 시작한 서울 신혼생활은 녹록치 않았다. 그래서 익산 행. 전세 500만원 살이에 첫째는 1급 장애, 잠 못 이루는 세월 이를 앙당 물었다.


황 씨의 하루는 24시간이 아니라 25시간이었다. 장애가 있는 딸을 키우기 위해 도시락 배달, 학원 차, 공장 날일, 새벽 우유배달 등 할 수 있는 일은 가리지 않고 했다. 아니 가릴 틈이 없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어머니였기 때문이고 장애아를 둔 부모였기 때문이다.


지금도 하고 있는 새벽 우유배달 일은 시작한지 17년 정도 됐고 장애인 활동보조 일은 3년이 넘었다. 새벽과 낮에 일을 하면서도 밤에 학원을 다니면서 검정고시로 고등학교 졸업장을 따고 요양보호사 자격증, 대형면허를 따는 등 공부에도 억척을 부렸다.


황 씨는 아이가 잔병치레가 많고 수술도 여러 차례 하다 보니 병원비는 현실의 가장 넘기 힘든 벽이었다. 그래서 새벽부터 밤늦은 시간까지 몸을 움직이지 않으면 안 될 처지였다. 더욱이 장애가 있는 큰 아이는 엄마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존재였기에 양육과 경제활동이라는 이중고에 쉴 틈이 없었다.



낮에는 아이를 데리고 병원을 다니고 새벽에는 우유배달을 시작했다. 아이가 너무 작아서 성장호르몬 주사를 맞았지만 부작용이 생겨 수술을 여러 차례 받기도 했다. 이후 아이가 학교에 들어가고 혼자 있을 정도가 되자 일을 하나 더 늘렸다.


그러다보니 일하다가 지쳐 잠들어 아이가 올 시간을 못 맞춰 동네를 뒤지고 다니는 일도 있었다. 심지어 아이에게 과자를 먹이기 위해 빈병을 줍는 억척을 부려야 남들과 같은 부모가 될 수 있었다. 


가장 힘들었을 때가 언제냐는 질문에 “아이가 아프면 한군데만 아픈 것이 아니라 여러 군데가 아프기 시작하고 내과, 외과를 번갈아 가다보니 어떤 병원을 가야할지 몰랐다” “아이가 장애가 있다 보니 생각하지도 못한 병에 걸리기도 하고 한창 생활고로 힘들었을 때라서 차비를 아끼기 위해 병원까지 뛰어가기도 했다”고 힘든 양육과정을 털어놨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 1:1 특수교육을 받았다. 그런데 마트에서 장을 보느라 5분 정도 늦어 아이가 사라진 적도 있었다” “둘째를 업고 온 동네를 찾으러 다녔는데 찾을 수가 없었다. 아이를 한 번도 남의 손에 맡겨본 적이 없었던 때라 걱정을 많이 했었는데 다행히 저녁쯤에 버스타고 집에 들어와 안도했다”고 어렵던 때를 회고 했다.


황 씨는 “어려서부터 집이 부유한 편이 아니어서 많이 힘들어 이를 악물고 잘살기 위해 노력했다”면서 “열심히 살아서 그런지 지금은 집도 마련하게 되고 남부럽지 않게 살고 있는 것 같다”고 미소를 지었다.


황 씨의 삶은 과거 우리 어머니들의 보편적인 모습인지 모른다. 그러나 1급 장애라는 무거운 자식의 짐을 지고 새벽시간부터 늦은 밤까지 시간을 쪼개는 삶은 흔치 않은 모습이다.


더욱이 이런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남들 부럽지 않은 경제력을 갖추고, 자신의 역량 개발을 위해 공부를 하고 자격증을 취득하는 모습은, 가정의 달 5월을 맞아 익산시민에게 귀감이 되고도 남을 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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