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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선 목전 이춘석의 정치역정과 과제는?
  • 정용하 기자
  • 등록 2024-02-23 10: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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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8대부터 내리 3선… 4년여 권토중래
  • 승패 요인은 ‘소통’, “게으르지 않아야”

이춘석(사진)은 1963년 3월 7일 전라북도 이리시 황등면 죽촌리에서 함안 이씨인 아버지 이순철(李淳喆)과 어머니 성주 이씨 이달삼(李達三)의 세 아들 중 막내로 태어났다. 남성고등학교, 한양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였다. 이후 사법시험(사법연수원 20기)에 합격한 뒤 고향인 익산에서 변호사 사무소를 운영했다.


이춘석의 정치 입문은 지난 2007년 대선에서 손학규 지지세력의 전북 지역 핵심 역할을 맡으면서이다. 손학규는 대선 후보에 오르지 못했지만 이후 이춘석은 손학규계로 불리게 된다. 그러다가 지난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 나서게 된다.


당시 현역 국회의원이었던 한병도가 공천과정에서 컷오프 되고, 전국구 의원이었던 김재홍 마저 누르고 익산갑에서 첫 뱃지를 달게 된다.


이어서 4년 후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통합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무난하게 당선되었다. 이후 새정치민주연합 원내수석부대표를 역임하였다.


그리고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3선 중진 반열에 오르게 된다. 당시 안철수 바람으로 국민의당이 호남을 석권하다시피 한 가운데 거둔 몇 안 되는 고된 생환이었다.


이후 그는 제19대 대통령 선거 기간에는 문재인 후보 원내 비서실장, 전라북도 공동선거대책위원장으로도 활동했다.


2020년 제21대 더불어민주당 익산갑 경선은 시작부터 녹록지 않았다. ‘차관급’ 국회사무차장이라는 이력을 내세운 김수흥이 강력한 타자로 나선 것이다. 3선에 대한 피로감이 기저에 있던 익산갑은 이춘석을 버리고 김수흥을 선택했다. 차관급이라는 명함이 일정부분 먹인 결과였다.


경선에서 패배한 이춘석은 이후 아이러니하게도 박병석 국회의장 당시 ‘장관급’인 제34대 국회사무총장에 내정됐다. 차관급인 국회사무차장 출신 김수흥과 장관급인 국회사무총장 이춘석이라는 묘한 대조였다.


그리고 제22대 국회의원 후보를 확정하는 경선에서 이 두 사람은 다시 맞붙었다. 결과는 다시 이춘석이었다. 1승 1패의 전적, 두 사람 모두 그 한 번의 패인은 무엇이었을까. 유권자가 가장 많이 꼽는 것은 ‘소통’이다.


지역 정치권 관계자는 “전북 정치권의 고질적 병폐는 국회의원의 게으름이다”며, “일단 당선되면 시민과 접촉이 현격하게 줄어들어 소통부족이라는 불만이 곳곳에 터저 나온다”고 진단했다.


이어 “4년이라는 임기 동안 중앙정치를 열심히 하는 것은 당연하고 지역민들과 접촉도 게을리하지 않아야 다음 4년을 기약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정용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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