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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부리잠 - 손춘호, 전석기에게
  • 익산투데이
  • 등록 2017-01-18 18:2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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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부리잠
- 손춘호, 전석기에게

1990년, 마이산(馬耳山)아래뜸에서 그들이 왔다
커다란 말귀(言耳) 앞세우고 왔다
질통으로 짊어지고 온 염려는 이웃과 형제들의 말귀(言耳)
마을 나설 때 탑사 돌탑무더기에 소원 몇 더하고
더하다가 넌지시 뺀 하나의 꿈은 가수였고 배우였다고
아니 또 다른 무엇이었는지도 모르지만
말귀 알아들어 다행이다 느덜만 잘하면 괜찮을 거야! 
지난한 날들의 말(言)이 말(馬)고삐 잡고 달려와
흙먼지를 풀풀 날렸다

전북기공2부는 달빛별빛공업고교
푸르도록 시린 빛에 노출된 파릇한 소년들 거기 있다
수인사 후 결재에 오른 미성년자 취업 동의서에
뭉툭한 아비의 지장이 눌리고 달빛별빛의 사인이 새겨진다
부드러운 손등이 거북이 등딱지 갑골문자로 화하기까지
미성년자 일일 일곱시간은 아홉시간을 예사로 넘기고
장비를 정비하는 날이면 잔업 아닌 무휴노동력을 제공하느라
잠을 떨어내지 못한 단체숙소는 늘 난실난실 는적거렸고
없는 자리 만들어 불렀으니  
다그쳐 생산성 배가시키라는 명을 받아올 때면
관리자의 발도 허둥거려 자갈길에 미끄러지기 일쑤였다
이따금 떡볶이 값으로 소년들의 바지 뒤춤에 찔러준
기천 원의 지폐가 그들의 울분을 눌러주기를 바랄 뿐이었다

세월의 그루터기 그들의 자녀가 똑 그 나이가 되었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무시로 떠올라 자리마다 늦은 사과를 보냈다
천만에요, 다 추억인 걸요!
잘 해 주신 것밖에 기억나지 않아요!
때린 자는 평생 고부리고 자고 맞은 자는 발 뻗고 잔다지
당한 이는 기억도 못한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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