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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들의 천국, 소록도
  • 편집국 기자
  • 등록 2023-08-10 11: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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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시 용지면에 1993년 사회복지공무원으로 첫발을 내디뎠다. 한센인 정착촌이 있다. 한센은 노르웨이 사람으로서 1873년 나균을 발견하였다. 그 이름을 명명하여 한센병이라 불리게 되었고, 나균에 의해 발생하는 만성감염병이다. 


당시 전북에는 5개 시․군에 12개의 한센인 정착촌이 있었다. 10년 8개월간 근무하며 자연스럽게 그들의 삶에 관심을 두게 되었다. 한센인의 고향인 소록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호기심이 생겼다. 한국한센복지협회 전북지부에 소록도 견학을 건의하여 한센인 회장단과 사회복지공무원이 견학을 다녀왔다. 그때가 1996년 무렵이었고 생면부지의 소록도에 처음 찾아갔었다. 우리나라 생활보호제도의 말기이자 복지불모지 시절에 한센인과 동고동락을 함께해왔다. 특히 2000년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도입과정에서 전국 한센인 정착촌 거주자 수급 특례지침을 제정하는데 선봉장 역할을 하기도 했다. 


그 후 2021년 왕궁면에 면장으로 발령받아 왔다. 올해 6월에 왕궁 정착촌, 사회단체와 사회복지공무원과 다시 소록도를 찾았다. 27년 전에는 배 타고 갔고, 올해는 버스로 소록대교를 넘어서 가게 됐다. 공무원 생활 29년여 동안 공교롭게도 김제 용지와 익산 왕궁에서 근무하며 한센인과 묘한 인연을 맺어왔다. 왕궁이 큰 집이고, 용지가 두 번째 작은집이다. 용지는 공무원의 친정집이자 첫 근무지로써 마음의 고향이라 할 수 있다. 


어린 사슴을 닮은 소록도. 섬 전체가 한센인의 치료와 생활공간이다. 우리나라 수많은 섬 중에서 평생 한(恨)을 간직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곳이다. 일제강점기 때부터 전국 부랑자인 한센병 환자들을 강제 수용한 천형의 섬이다. 27년 전 방문 때와 크게 달라진 것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관광지가 아닌 한센인들이 투병 생활을 하는 병원이기 때문이다. 일반인들은 예나 지금이나 중앙공원까지만 방문할 수 있다. 생활 병동과 사이에는 휴전선처럼 펜스가 가로놓여 출입이 금지돼 있었다. 


국립소록도병원 앞의 한센병 박물관이 색다르게 눈에 띄었다. 소록도 사람들의 삶의 흔적들과 한센병 극복을 위한 노력, 그리고 사랑의 나눔을 모아서 만들어진 인권의 전당이다. 1916년에 자혜의원이 처음 설립되었고 1백 년이 지난 2016년에 그 기념하는 뜻에서 소록도의 상징인 붉은 벽돌로 한층 한층 쌓아 올렸다. 


1933년 소록도 벽돌공장이 세워져 한센인들이 일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노동에 대한 보수도 있었지만 1937년 중일전쟁부터 강제노동이 시작됐다. 빠른 생산을 위해 고된 노동이 시속 되자 한센인들의 병은 더욱 심각해졌고, 많은 이들이 희생당했다. 반항하면 감금실에 갇혀 단종수술을 받았고, 섬 밖으로 헤엄쳐 나가다 사망한 이들도 더러 있었다. 귀의하여 화장되어 만령당에 안치되었다. 현재 벽돌공장 굴뚝 자리에는 십자가상이 서 있다. 공장 터에는 옛 흔적은 온데간데없고 아담한 공원으로 변모하였다.


소록도 아이들은 부모와 떨어져 보육소 생활을 했다. 한 달에 한 번 소나무 숲 수탄장에서 면회가 이루어졌다. 길가 철조망을 사이에 두고 안부를 묻거나 눈으로만 서로를 확인하던 탄식의 장소였다. 애한의 추모비는 광복 직후 자치권을 요구하던 주민 84인이 희생당했던 사건을 기억하고 추모하기 위해 사건 현장인 국립소록도병원 앞 바닷가에 세워졌다. 


한마을에서 혼례를 앞둔 연인이 징병과 위안부로 한센병과 위안부로 떨어져서 살았던 삶의 애환과 순애보를 담아낸 소재원의 소설 『이야기』는 말한다. “소록도는 미친 것 같아요. 잘못한 사람들이 당당하고 쥐똥 만큼도 잘못한 게 없는 사람들은 죄인으로 살아가잖아요.”


일반인 출입이 가능한 중앙공원은 1940년에 완공되었다. 한센인들의 강제노역으로 일본인 원장을 위한 공원이었다. 공원 내에는 한센병 시인 한하운의 보리피리 시비, 일본인이면서 한센인들을 가족처럼 아껴주고 헌신적으로 보살핀 소록도의 슈바이처 하나이젠키치 원장의 창덕비, 그리고“한센병은 낫는다”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는 구라탑 등 한센인들의 애한(哀恨)과 박애 정신을 엿볼 수 있어 보는 이의 심금을 울린다. 『이야기』에서는 “우리의 피와 살이 만들어낸 곳이요. 사람들이 이곳에 와서 보고 즐거워했던 꽃들이 우리의 눈물이고 고통이요.”라고 했다.


이청준의 소설 『당신들의 천국』은 일제강점기 소록도에 한센인의 강제 수용 만행을 실화처럼 담아냈다. “(일본인) 원장님께서는 물론 쫓기고 학대받아온 이 섬 5천 나환자를 위해 천국을 꾸미고 싶어 하셨습니다. … 이 섬 위에 꾸미고 계신 원장님의 천국은 어떻습니까. … 이 섬 원생들의 천국이기 전에 우선 원장님의 천국인 것입니다.”


소록도에 원장을 위한 당신들의 천국 건설은 1백 년이 흘러 우리들의 천국이 되어야 한다. 한센병이란 천형의 질병으로 저주받던 상처는 나아가고, 생활과 복지 시설은 늘어가고, 짓밟혀온 인권은 나날이 보호 신장 될 때 소록도는 참된 지상낙원이 될 것이다. 왕궁 정착촌 다수 한센인들의 본향이 소록도로써 당신들의 행복도 기원해 본다. 


글쓴이 

채수훈 왕궁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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