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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긋난 약속
  • 익산투데이
  • 등록 2017-02-08 17: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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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조석구




어긋난 약속

친구 할머니께서 어느 날
널랑은 당최 늙지 말아라
우리 큰 손자랑 둘도 없는 친구니
짜잔한 것들은 다 내가 델꼬 가마
이 좋은 세상 흐무지게 살아라 그러셨지요

간난신고 이겨내고 살 만하니 늙어 힘도 없고
사람 사는 것 같지도 않다는 친구 할머니
지난한 세월을 컥, 가래로 내뱉는다싶었지요

대보름달 두둥실 떠오르던 어스름
기별 넣은 손자를 마중 나온 할머니가 버스 턱에서
까칠한 손을 내밀어 내 차가운 손을 어루만질 때
손 가락지는 안 걸었어도 별도리가 없었지요
원양어선을 타러 떠난 친손자 대신
그럴께요 그러겠어요 고개를 주억거릴 밖에요

놀이에 정신 팔린 손자를 불러 밥 먹자셨다지요
흙투성이가 되어 놀다 달려와
밥상 위에 놓인 수제비를 보고선
밥 먹으라더니 밥은 없고 오늘도 수제비냐 
갠신히 수제비라도 굶기지 않으려는 할머니를
철없는 손자가 길게길게 울렸다지요

요르단 강,
고기잡이에 나선 손자는
기한을 두 차례나 연장하며 돌아오지 않고
침침한 눈을 들어 학수고대하던 할머니
기다림에 지쳐 찾아 나셨는가요?
뒤늦게 돌아온 친구 증손자를 놓았는데
어느 고샅에서 길을 헤매시나
오늘도 모습을 보이지 않는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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