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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풍남문 농성장에서 만난 익산사람 ‘강익현’
  • 홍문수 기자
  • 등록 2017-04-13 10:2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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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광화문광장 외 전국 유일 전북 풍남문 농성장

세월호 참사 재발 방지로 안전국가 시발점 삼아야

익산시민, 이웃·자치단체·국가 일에 더 큰 관심과 시간을…




강익현 한의원장





침몰 1,089일만의 세월호 인양. 진실규명, 9명 미수습자 유해의 온전한 인양, 재발방지로 안전한 국가 만들기를 주장하며 혹독한 추위와 무더위를 무릅쓰고 천막 안에서 3년을 지내온 사람들.


서울광화문과 전북 전주 남문농성장의 세월호 지킴이 얘기다. 이곳 전주풍남문의 세월호 남문농성장은 전주시민을 비롯하여 전북 각 시·군 지역의 도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여 지난 3년간 천막농성을 이어오고 있다.


익산에서도 전주를 오가며 전북 남문농성장 세월호 지킴이로 나선 사람들이 있다. 

익산의 세월호 지킴이 중 강익현 한의원장을 만나 세월호 참사 이후 전주 풍남문 천막에서의 농성과정과 재발방지를 위한 대안모색 그리고 개인적인 소망을 들어봤다.




▶참사이후 국민이 해야 할 일은?

현재 구속 수감되어 검찰의 조사를 받고 있는 박근혜 전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 전과 이후의 대한민국은 달라져야한다”고 말했다. 맞는 말이다. 


돌이켜보면 3~5년마다 한 번씩 대형 사고가 일어난 것을 보면 분명 틀린 얘기가 아니다. 그때 마다 정권은 ‘어쩔 수 없는 사고였다’고 치부하지 않고, 생명의 안전에 대한 허술한 대비가 불러온 ‘인재(人災)였다’라고 지적하며 재발방지를 외쳐댔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에서 보듯이 국민의 눈물로 이어지는 역사를 되풀이 해왔다. 전북 부안 위도 앞바다에서 파도에 뒤집혀 292명의 사망자를 내고 침몰한 훼리호 사고가 1993년에 일어났을 때도 그랬다. 


재발방지를 약속하고 방안을 강구하고 대책을 만들었지만, 남의 일로 치부되고 시간이 흐르면서 기억에서 잊혀지고 말았다. 


이러한 모든 안전 불감증과 기억불감증은 대한민국이 급속한 경제 성장을 하면서 ‘함께 챙겼어야 할 일들’을 허술하게 방치했던 결과로 보여 진다. 기술의 발달로 배와 비행기는 커지고 승객은 많아져 수입은 늘었으나 거기에 맞는 안전은 이에 미치지 못했던 것이다. 


국민들은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개인 스스로 힘만으로는 안전을 보장하기는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됐다. 또한 국가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으면 재난이나 참사에 개인은 너무 무력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국민은 국가에게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거리로 나와 촛불을 들며 외치고 있는 것이다. 


국민 된 권리로 참사의 원인과 재발방지 그리고 안전한 국가를 요구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것이 인권이고 민권이다. 이러한 민권이 국가권력을 쥐고 있는 정권과 충돌을 일으킨 과정이 세월호 참사 이후에 진행된 지난 3년이다. 나는 이것을 ‘제2의 세월호 참사’라로 주장하고 싶다.





▶단지 해상교통사고일 뿐이라는 주장에 대해서 

그렇다. 여기에는 ‘어쩔 수 없었다’라는 논리가 숨겨져 있다. 그래서 ‘애석하지만 죽은 목숨에 대해서는 보상하고 잊자’라는 것이다. 이것이 박근혜정권의 논리이다. 


그러나 국민들은 ‘스포츠 경기처럼 TV로 생중계되는 당시의 침몰사고가 어쩔 수 없었던 사고’라는 데에 동의하지 않는다. 대통령을 비롯하여 정권이 최선을 다했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국민들은 신뢰하지 않는다. 






▶정권과 민권의 충돌이란 무슨 얘기?

국가는 3가지 권리를 보유해야 온전한 나라가 될 수 있다. 


첫째가 국권이다. 온전한 국가는 국방과 외교 등 국제관계에 있어서 독자적 결정권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과거 삼국을 통일한 나라를 통일신라라고 하지만 당나라연호를 사용하는 등 속국임이 명시 되어있고, 당시 몽고나 일본에게는 말할 것도 없고 현재 미국에게도 완전한 국권을 주장하지 못하고 있다는 시각이 있다. 


둘째가 정권이다.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공권력으로 밖으로는 국권을 지키고 안으로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권력이다. 


셋째는 민권이다. 인간으로서의 천부적 권리를 누릴 수 있는 것을 말한다. 세월호 참사 이후에 민권과 정권이 충돌했다. 


민의 생명이 왜 손상 받았는지 원인을 규명하고, 재발방지를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

련해야한다는 민권의 주장을 박근혜 정권은 자신의 통치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고 인식한 것 같다. 정권의 안정적 유지를 선택한 정권과 국민의 안전을 요구하는 민권이 충돌하게 된 것이다. 


박근혜 정권은 세월호 진상조사위원회의 활동을 삼척동자도 알 수 있는 방법으로 방해·해산시켰으며 국민을 편가르기 하여 적대적 관계로 만들었고 여기에 국가정보원과 청와대가 깊숙이 개입한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국민을 편 갈라 서로 적대적 사고를 형성하게 한 사례들은 너무나 많다. 사망자 한 사람 당 몇 억 원씩 국민 세금으로 준다거나.… 천안함에서 사망한 군인들보다 더 많은 보상을 해달라고 한다거나… 타인을 위해 목숨을 바친 의사자로 사망 학생들을 지정해달라고 요구했다거나… 생존학생들의 대학 입학 시에 특별한 대우를 해 달라고 하여 다른 학생들의 입학에 불이익을 끼치는 것으로 인식하게 했다거나… 끝내는 자식의 시체를 놓고 장사하려한다는 가슴 아픈 얘기까지 서슴지 않으며 입에 담기조차 힘든 얘기들이 오고갔다. 


이는 유가족과 민권을 주장하는 종교계 문화계를 비롯한 양심세력의 주장과는 아무 상관이 없으며 단지 이들을 패륜아로 고립시켜 정권의 안정을 유지하려는 목적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큰 몫을 한 것이 가짜 뉴스 제작자와 그것을 퍼 나른 언론들이다. 유가족의 작은 잘못을 침소봉대하고 소위 블랙리스트를 작성하여 민권세력들을 옥죄려했던 정황들이 박근혜 전 대통령 구속이후 속속 드러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전북은

이에 굴하지 않고 전북은 남문 농성장을 중심으로 대열을 흩뜨리지 않고 저항해왔다. 전주시민을 위시하여 익산 등 각 시·군의 도민들이 농성장 지킴이를 자임하면서 세월호 가족들의 주장과 진실 그리고 진상조사 과정들을 도민에게 알려왔다. 


이에 도민은 물론 한옥마을을 방문하는 전국의 관광객들이 성금을 모아 뒷바라지를 해 주었고 농성장은 매일 일지를 기록하며 결산 공개로 답해 주었다. 물론 어려움도 많았다. 겨울에는 추운 공기로 밤에 콧등 발등이 아리어 왔고 여름에는 천막의 열기에 어지러울 만큼 지치기도 했다. 그러나 장소와 전기 사용부터 여러 불편함을 감내해주신 전주 시민과 시장님 그리고 시 당국의 배려가 큰 힘이 되어 주었다. 



▶익산에서도 농성천막이 있었는데

참사가 일어난 2014년 4월 16일 이후 약 3개월 정도 천막농성이 있었다. 그러나 처음 전국 어디나 마찬가지지만 천막을 지키는 주축세력은 시민사회단체 노동·농민단체였다. 


이들은 고유의 자기 업무에다 세월호 문제가 장기화 되는 하중을 겸하기 어려워 해산했다. 전주도 마찬가지였으나 시민의 자발적 참여로 농성장을 지난 3년간 이어왔다. 그렇지만 익산은 그리하지 못했다. 



▶세월호문제 해결에 개인의견이 있다면

진상규명의 목적은 책임자 처벌보다 미래의 국가안전에 더 방점이 있어야한다고 본다. 그래서 진상규명에 도움이 된다면 플리바게닝(plea-bargaining 검찰이 사건 관련자 및 피의자와 협상을 통하여 유죄를 인정하는 대신 형량을 경감하거나 조정하는 제도)도 국민적 합의를 전제로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이것은 과거 참사에 대한 처벌보다 미래의 안전한 나라에 무게를 둔다면 가능할 수도 있다. 



▶ 세월호 3주기 익산 추모행사는

14일(금) 저녁 7부터 영등동 하나은행 앞에서 유가족에게 엽서보내기, 추모공연이 이뤄지고, 14일(금) 오전 9시부터 16일(일) 오후 7시까지 분향소를 설치 운영할 계획이다.



▶끝으로 남기고 싶은 말은

먼저 정부에게 민무신불립(民無信不立 국민이 신뢰하지 않으면 정권은 존재할 수 없다)을 강조하고 싶다. 

논어의 말인데 박근혜 정부는 정권의 안전을 위해 국민의 신뢰를 버렸다.  이는 다음 정권과  위정자들 그리고 자치단체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클 것이다. 그 다음 익산시민들에게 한 말씀드린다면, 특정사람들이 만든 단체가 할 것이라고 생각지 말고, ‘공공의 선’에 조금 더 마음을 가깝게 하고, 참여하고, 행동하여 자녀들에게 ‘익산에 사는 것’이 큰 긍지임을 심어 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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