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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거슬러 만나는 익산의 근대문화유산
  • 편집국
  • 등록 2018-06-07 10:3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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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 익옥수리조합 사무실 및 창고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역사, 춘포역
호소카와 농장 관리인의 일본식 가옥


지난 2015년 7월 익산은 한차례 축제 분위기에 휩싸였다. 


부여, 공주, 익산으로 이어지는 백제역사유적지구가 2015년 유네스코(UNESCO)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며 역사유적으로서의 특별한 가치를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12번째 세계문화유산이 됐으며 등재 후 시간이 지나면서 익산은 고도(古都)로서의 명성이 더욱 높아져 가고 있다.


한편 우리지역에는 고도 백제의 역사뿐만이 아니라 일제 강점기 수탈과 아픔의 역사 또한 간직하고 있다.


넓고 풍요로운 곡창지와 교통의 요지라는 이점을 이용해 일본은 우리지역을 수탈의 최적지로 삼았으며 당시의 창고건물 및 일본식 가옥 등의 아픈 역사의 현장은 아직까지 익산시에 산재되어 있다. 그 역사를 되새겨 교훈으로 삼고자 일제 강점기 시대의 문화유산들을 따라가 보았다.


▲ 근대 농업 수탈의 전초기지에서 문화의 담금질을 시작하다



익산역 앞 문화예술의 거리 안쪽으로 도보로 10분 남짓 걸어가다 보면 익산 문화재단이라는 방향 안내판이 나타난다. 코너를 돌면 정면에 빨간 벽돌에 범상치 않은 아우라를 내뿜고 있는 건물을 만날 수 있다. 


이 건물은 일본인 농장 지주들이 쌀 생산량을 늘리고자 창설한 익옥수리조합의 사무소 및 창고로 사용된 건물로서 서양식(르네상스의 팔라죠 양식)으로 1930년에 지상 2층의 붉은 벽돌로 지어진 건물이다. 


정면 중앙의 출입구와 위쪽 창호 부분은 테두리에 꽃잎무늬 형상의 인조석으로 치장해 붉은 벽돌과 대비를 이루고 있고 맨사드 지붕 등 독특한 당시의 건축기법들을 보여주고 있다. 


토지 개량과 수리 사업을 명분으로 설립되어 과다한 공사비와 수세를 부담시켜 지역 농민을 몰락시키는 등 일제에 의한 우리나라 근대 농업 수탈의 역사를 증언하고 있는 건물이지만 애석하게도 건축 및 기술사적으로 매우 가치가 높아 건축공학도들도 즐겨 찾는 곳이며 지금까지도 그 견고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해방이후 전북농지개량조합의 청사로 사용되다가 이전하면서 빈 건물이 됐고 수십 년 간 폐허로 방치되던 건물은 2005년 등록문화재로 지정이 되며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았다. 그 후 2009년 ‘익산시 문화재단’이 입주하고 새 단장을 통해 지금은 익산시의 문화 예술의 중심지로 탈바꿈 했다. 


▲ 우리나라 최고(最古)역사, 춘포역



익산시 춘포면에는 지어진 지 100년이 넘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가 있다. 2011년 폐역되기 전까지 전주와 익산을 이어주는 이곳 춘포역은 과거 이용객들로 상당히 꽤 분주한 장소였다고 한다. 


하지만 교통의 발달로 인한 이용객 감소로 2007년부터는 열차가 다니지 않았고 결국 전라선 복선전철화 사업으로 2011년 폐역이 되면서 현재는 역사만 덩그러니 남아 있다.


2005년 춘포역사가 등록문화재로 등록이 되었고 문화재청에서는 문화재 지정 사유를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1914년에 건립되어 대장역이라 망명된 역사 건물로, 1996년 춘포역으로 개칭됐다. 슬레이트를 얹은 박공지붕의 목조 구조는 소규모 철도역사의 전형을 잘 보여주고 있으며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역사로 역사적, 건축적, 철도사적 가치가 있다.”


원래 선로가 깔려 있던 역사 안쪽으로 가면 옛 철로는 철거가 되고 새로 건설된 전라선 철로가 보이는데 불과 십여 미터를 두고 현재와 과거가 공존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하지만 역사에 철로가 없다보니 무언가 썰렁한 느낌을 지울 수는 없다. 춘포역사과 함께 철로를 그대로 두어 옛 모습을 간직했더라면 관광지로서 더 많은 방문이 이어지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도 든다. 


그래도 옛 추억을 간직하고자 역사 내에 과거의 사진과 기록 등을 전시해 두었으며 7080 추억여행 등 문화 행사들을 추진해 춘포역을 새로운 문화공간으로 탈바꿈 시키고자 하는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다. 방문 전 전화예약을 하면 실내구경과 함께 명예역장님의 해설 및 관람 안내를 받을 수 있다. 


▲ 호소카와 농장과 수탈 시대의 산증인



춘포역에서 춘포면사무소를 지나 가다보면 굉장히 이국적인 느낌의 한 가옥을 만날 수 있는데 이 가옥은 과거 일제강점기 호소카와 농장의 관리인이었던 일본인 에토가 1940년경 농장 안에 지은 2층 건물로 나무판자를 잇대어 지은 일본식 가옥이다. 


당시 이 가옥을 포함한 춘포지역의 엄청난 규모의 농지는 일본에서 건너온 호소카와가의 농지였으며 그 규모는 당시 호남지역에서 세 번째였다고 한다. 


춘포지역 3분의 2 이상인 천명 이상이 호소카와 농장에서 소작을 했고 지명 또한 원래 지명인 춘포에서 넓은 뜰 이라는 뜻의 ‘대장촌’으로 바뀌게 되며 아직까지 주변지역에 ‘대장’이라는 지명들이 간혹 사용되고 있다. 


구 일본인 가옥은 대표적인 호남지역 농업 수탈 지역이었던 춘포의 당시 상황을 잘 보여주는 건물이다.


팔작지붕에 일식 기와를 사용한 이 건물은 편의성 때문에 내부는 일부 수리 및 개조가 되었지만 전체적으로 원형을 간직하고 있어 지역사적, 건축적 중요한 가지가 있는 유적이며 현재는 등록문화재로 등록이 되어 있다. 


지금은 이 건물에 일반인이 거주하고 있어 평상시에는 공개가 되지 않지만 지역행사가 있을 때 한 번씩 공개해 그 모습을 드러낸다.


우리들의 근대사는 일제 강점기 시대의 아픔이 명백히 존재하고 있지만 단순히 아픔의 역사만이 아니라 전통과 현대를 잇는 가교 역할을 하는 시기이다. 


근대 문화가 도입되며 개화가 시작된 중요한 시기에도 불구하고 이 시기에 형성된 다양한 문화유산에 대해서는 체계적인 조사와 보존 노력 없이 급격한 산업화 속에 많이 소실되고 훼손돼 왔다. 아니 먹고 살기 바빴던 전후세대에 그럴 겨를이 없었던 것일 수도 있다.


우리시에도 일제 강점기 때의 건물과 장소들이 곳곳에 남아있다. 아픈 역사의 현장이라고 생각한다면 한없이 마음이 아프지만 이를 잘 보존하고 되새김으로서 우리 후손들에게 이런 역사가 다시는 되풀이되어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줄 수 있는 교육의 장으로 활용하는 것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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